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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되는 ‘지경학’ 시대, 새로운 위험과 기회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 6월 2주차

딜로이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의 최신 경제 뉴스와 트렌드 분석

딜로이트 인사이트는 글로벌 경제 및 산업 구도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이슈에 대한 인사이트를 소개하고 최신 경제산업 데이터와 그 함의를 분석한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를 매주 금요일에 발행합니다.

딜로이트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이라 칼리시(Ira Kalish) 박사를 비롯한 딜로이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네트워크(DGEN)가 매주 배포하는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를 통해 중요한 세계 경제 동향을 간편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는 국내 유력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부 배포되고 있으며, 딜로이트의 풍부한 경제·산업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플랫폼의 기초 콘텐츠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많은 관심 및 활용을 부탁드립니다.

‘지경학’(geoeconomics)이 세계 경제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은 관련 변화에 따른 위험과 기회에 직면해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미국의 대중 첨단반도체 수출 금지, 그리고 2025년 개시된 관세 전쟁과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 등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를 직결하는 지경학적 조치들이 난무하고 있다.
결정적인 변화는 2025년 1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최신 국가안보전략에서 확인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냉전 이후 세계 패권 국가 역할을 자임했던 이전 미국의 국가 전략을 부인하고 국가 안보를 본토와 서반구 중심의 접근 방식으로 재편했다. 또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경제 안보에 전례 없이 큰 비중을 부여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음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우호관계인 다양한 동맹에 대해서도 거래적 동맹관을 분명히 했다.[1]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세계 무대와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전략적 자율성 제고가 화두로 부상했다. 또한 앞서 수십년간 세계화를 통해 고도로 통합되어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기업들은 갈수록 분열되는 세계 무대에서 다양한 위험과 기회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 경제 정책과 기업 전략의 우선순위가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더 이상 효율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회복탄력성, 다각화, 지정학적 인식 및 전략적 자율성 확보가 장기적인 경제 성장과 기업 성공을 위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2]
따라서 급격히 부상하는 지경학 동향을 파악하고 그 배경과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갈수록 긴요해지고 있다. 강대국의 다양한 경제 안보 정책에 따라 교역 관계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곳, 산업 정책이나 경제적 제재, 군사적 분쟁 등 구조적인 위험과 이에 대한 노출 정도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본격화되는 지경학 시대
과거부터 각국 정부는 기존 금융 및 무역 관계에서 비롯된 자국의 경제력을 활용하여 지정학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를 달성해왔는데, 이러한 관행을 일컬어 '지경학' 혹은 ‘지경학적 권력’(geoeconomic power)이라고 부른다.[3]
경제학 내지 정치학, 전략학의 일부 혹은 하위 분야로 포함되기도 하는 지경학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는 없다. 대개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지정학적 힘을 과시하는 것이 경제적 성과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다. 좀더 넓게 보면, 지경학은 국제 경제, 지정학, 전략의 상호작용으로 볼 수 있다. 공식 용어는 1990년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Luttwak)이 냉전 이후 군사력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지정학이 지경학적 권력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 논문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개된 냉전 시기에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중요한 경쟁(혹은 전쟁) 무기로 등장한다. 미국은 소련(USSR)의 군사력을 제한하기 위해 당시 서독, 프랑스, 영국 등을 포함한 17개국과 협력하여 대공산권 다자간 수출 통제 조정위원회, 일명 코콤(COCOM)을 설립, 당시 공산권 경제상호원조회의인 코메콘(COMECON) 소속 국가들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행했다. 코콤은 공산권 몰락 이후 1994년 3월 31일부로 기능을 중단했으나 이후 바세나르 협정(Wassenaar Arrangement)을 통해 여전히 수출 통제가 시행되고 있다.
냉전 시기에 지경학은 상품 교역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지불 시스템에서도 등장한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태환을 중단하자, 복수의 통화를 이용한 국제 금융 거래가 급증했다. 당시 미국의 퍼스트내셔널시티은행(시티은행의 전신)이 새로운 글로벌 메시징 표준을 개발했지만, 유럽에서는 미국의 단일한 대형 금융기관이 국제 결제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이 때문에 타협안으로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1973년 국제은행 간 금융통신협회(SWIFT)를 설립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현재에도 차단 협박을 통해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지경학적 권력을 휘두르는 수단이 되고 있다.
1990년 동서독 통일과 1991년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경제 정책과 국가 안보를 분리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한 자유시장경제는 세계화에 매진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과잉 생산의 피해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와중에도 미국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대중국 투자와 자본 투입을 확대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패권 경쟁,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충격 등으로 이제는 경제 정책과 국가 안보 정책 결정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사이 산업 정책의 등장,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 소유 확대, 산업 전체와 은행을 재편하는 광범위한 제재 조치 등 막대한 비용과 고통을 수반하는 의사결정이 일상화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과 정부, 기업은 사실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역사 내내 지경학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지난 30년이 예외적인 경우였음을 뒤늦게 확인하게 된다.[5]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의 융합
미국과 중국 간의 강대국 경쟁이 시작되면서 지경학은 일상적인 뉴스거리가 됐고,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모두 적극적인 정책적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구상,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화웨이 5G 기술 제한,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무역 및 금융 제재가 이어졌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경제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투사하는 가운데, 미국도 적극적인 견제에 나서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는 데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왔다. 일례로 2008년 정치적 분쟁 속에서 한겨울에 유럽 일부 지역으로 가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차단했다. 미국이 제재를 통해 이란의 핵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주도한 것은 세계 경제에서 달러의 지배력과 국제 금융 시스템 지배에 기반한 것이다.
최근 사례로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2022년 10월 7일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약화시키고 인공지능(AI) 및 슈퍼컴퓨팅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후 미국은 일본 및 네덜란드와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제한 협약을 체결하여 심자외선(DUV) 및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핵심 장비의 대중 수출을 공동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에 대응하여 중국은 대체수입, 우회무역, 국산화 가속화 등으로 대응했다. 특히 대만의 우회 및 재수출 창구로 역할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는 공업정보화부에서 반도체 장비 국산대체 특별계획을 발표하고 반도체 관련 장비 국산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최근 대만은 미국과 무역 협상의 일환으로 중국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일부 블랙리스트 기업 외에 중국 내 모든 고객사에 대해 부과하는 전면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목은 대만의 기술 안보 및 국가 이익 수호를 위한 조치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 정책에 동참하는 것이다.[6]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계기로 2025년 5월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해 미중 무역협상을 재개하는 효과를 얻어냈다. 또한 중국은 같은 해 11월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 시 개입 발언 이후 올해 1월부터 강도 높은 대일본 희토류 수출 통제를 실시했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의 중장기 전략경쟁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미국 정부는 희토류 등 중요 광물을 사용하는 일본 제품이 중국의 금수 조치로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개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일 희토류 금수 조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의제로 부상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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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차별적 개입 정책의 급격한 증가 추세

출처: Global Trade Alert. 딜로이트 인사이트

세계 최대 경제국이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장악하는 미국이 기존의 세계 질서에서 패권 국가의 위상과 그에 맞는 경제 모델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1기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개시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산업 정책’을 부활시켰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의 경제 정책이 세계 무역과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과 이에 따른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지경학적 권력 경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패권국이 발휘하는 지경학적 권력은 자신과 관계에서 이탈하는 국가나 기업을 금융서비스와 핵심 투입재에서 모두 차단하겠다는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표면적인 경제 정책에서 ‘국가 이익을 위한 전략적 행동’을 부각시킴으로써 보호무역주의나 국가주의적 목표를 은폐하고자 한다.
통상 지경학적 권력 투사는 대체 불가능한 희토류나 달러화 기반 결제 시스템 등을 이용한 제재 수단을 활용한다. 또한 첨단 반도체와 군사용 기술과 같은 전략 부문의 통제를 통해 세계 정치와 경제의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고자 한다. 최근 지경학적 조치들은 이러한 전략적 판단 위에 이루어진 것들이다.[8] 
K자형 세계화
세계 경제는 이미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했다. 30년간 형성된 세계화 추세가 중단되고 그 기반이 계속해서 침식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및 관세 정책의 변화와 글로벌 분쟁의 여파로 인해 갈수록 세계 경제의 분절화(fragmentation) 양상이 확고해지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과 계속되는 안보에 대한 우려는 글로벌 무역 관계, 투자 흐름, 국제 협력을 완전히 재편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2024년 도입한 지경학동향지수(Geo-economic Dynamic Index; GEDI)를 통해 최근 수년간 이러한 추세를 보다 추적 관찰하고 있다. GEDI 지수는 무역, 금융, 지정학 등 세 가지 가변적인 요소들과 문화 및 지리와 같은 두 가지 구조적 차원의 변수 데이터를 결합하여 세계화, 혹은 국제적 연결 방식의 변화를 추적한다.[9]
2025년 기준 최신 GEDI는 글로벌 통합이 20 세기 초 이후에 보기 드문 수준까지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세계 경제의 통합 수준은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에 최고조에 달한 뒤 위기와 함께 후퇴했지만, 2009년 전후부터 2011년 유로존 위기 전까지는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유로존 위기 발생 이후 무역과 금융의 통합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지정학적인 정렬은 2016년 이전까지는 강화되었지만, 이후부터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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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26 딜로이트 지경학동향지수: K자형 세계화

출처: Deloitte Geoeconomic Dynamics Index 2026, 딜로이트 인사이트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강화되는 것은 무역과 금융에 비해 세계 경제의 산출(GDP) 감소세가 더 가팔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통합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지만 2022년 이후에는 분절화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통합의 감소 추세가 빠르게 전개되었다. 특히 ‘지정학적 정렬’(geopolitical alignment)이 계속 붕괴되면서 이러한 감소세가 심화됐다. 은행 간 글로벌 통합은 계속 추진되고 있지만, 세계화와 경제 통합의 핵심 동력이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20년 이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지정학적 정렬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무역과 FDI 역시 추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 성장, 공급망, 자본 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동시에 보편적 수렴 방식이 아니라 지역적인 경로가 갈라지는 새로운 세계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통합 관계가 강화되는 반면 서방 세계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관세 인상과 지정학적 정렬의 약화로 인해 디커플링 양상이 전개되는 이른바 'K자형' 세계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11]
2025년에 GEDI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은 중대한 전환점이다. 이는 세계 경제의 통합이 더 이상 정치적 분절화의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세계 경제의 통합은 점점 더 지정학적 정렬에 따라 형성되고 있다. 중국을 중심 허브로 삼은 글로벌 사우스는 경제적·지정학적 통합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이 관세 인상, 지정학적 파트너십 축소, 중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 등으로 나머지 세계와 관계를 완화함에 따라, 서방 경제 전반은 지정학적·경제적 연계가 확연하게 약화되고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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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지정학적 정렬 추락, 무역 관계 약화, 금융 통합 정체

출처: Deloitte Geoeconomic Dynamics Index 2026, 딜로이트 인사이트

이러한 세계화의 추세 변화와 새로운 역학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은 역내 통합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 전역의 외부 파트너십을 다각화하는 이중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지정학적 정렬의 중요성
지정학적 동맹이 약화되면서 통합 추세가 약화되면 무역과 투자 그리고 경제 성장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정학적 정렬은 국내 안정, 투자, 생산성, 무역, 인적 자본의 개선과 조화를 이루면서 장기적인 경제 성장 요인이 된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냉전 이후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국제적 관계가 개선되면서 10년마다 국내총생산(GDP)이 약 2~5% 증가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분절화에 따라 이러한 상관관계가 역전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 1960년에서 2024년 사이 주요 강대국 사이의 지정학적 정렬의 변화가 GDP에 미친 영향은 국가별로 마이너스 30%에서 플러스 30%에 이르는 변화를 설명해주는 요인이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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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미국 VS 비미국 지정학적 정렬의 GDP 성장 효과

(단위 1조 달러)

출처: Tianyu Fan(2026). 딜로이트 인사이트

최근 미국은 경제 안보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 핵심 공급망 및 자원 확보, 재산업화, 국방 산업 기반 재활성화, 에너지 및 금융 분야의 강점 유지 등을 핵심 우선순위로 내세운다. 앞서 미국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내세워 민간 부문의 자원을 동원하거나 산업 정책을 구사하기 힘든 구조적 제약 때문에 지경학적 경쟁에 대한 적응에서 뒤처져 왔다. 하지만 지금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것은 이러한 취약점을 인식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당장 관세 인상 카드를 사용한 것은 최초에는 무역 적자를 줄이고 국내 제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지경학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 노선을 구축하기 위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관세 위협은 대개 협상력을 구축하는 수단, 즉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로 이해된다. 미국은 관세 부과 위협에서 물러서면서 파트너 국가들과 다양한 무역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협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지만, 처음 관세 부과 위협이 없었다면 이러한 협정들이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핵심 공급망에서 미국이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경제의 회복탄력성 뿐만 아니라 향후 실질적인 억제 능력에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급망 차질로 인해 국방 산업 역량과 지속적인 전쟁 수행 능력이 약화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군사력에서도 중국에 맞서기 어려울 수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올해 핵심 광물 관련 장관급 회의를 소집한 것은 민관 협력 투자를 통해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지경학적 경쟁의 위험과 기회
패권국이 특정한 투입 요소의 시장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경우, 이 투입 요소를 초크 포인트(병목/질식 지점) 또는 핵심 의존 요소라고 부른다. 글로벌 달러 결제 시스템 및 대출 기능은 경제의 필수적인 투입 요소인데 이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 미국에게 커다란 지경학적 영향력을 부여한다. 미국이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금융 제재를 가한 것이 그러한 지경학적 권력을 보여준다.[14]
하지만 특정 부문에 대한 통제력과 지경학적 권력 사이의 관계는 선형적이지 않다. 패권국이 해당 부문을 완전하게 통제할수록 그 권력은 불비례적으로 크게 증가한다. 특정 요소의 95%를 통제하는 것과 85%를 통제하는 것의 차이가 매우 크다. 해당 요소의 95%를 통제하게 되면 제재 대상은 사실상 대안이 거의 없어 패권국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85% 통제 수준이라면 제재 대상 경제가 의미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대안이 존재하게 되고, 패권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예를 들어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이 지속되고 국제 지불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 별로 없다고 해도, 이러한 지배력이 90% 미만으로 줄어들 경우 미국의 권력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중소 규모의 경제국들은 점유율이 10% 밖에 안 되는 대체 공급 요소가 있을 경우라도 압박에 저항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패권국에 대항하는 세력은 특정 투입 요소에 대한 대체 요소를 시장 지배력의 10%까지만 늘려도 패권국의 지경학적 권력을 뒤흔들 수 있게 된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대항하여 국내 결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중국 위안화 기반 시스템과 연결하는 시도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연합 세력의 금융 영향력을 크게 줄였고, 2022년 이후 부과된 광범위한 금융 제재의 충격은 생각보다 작았다. 중국과 인도 역시 러시아의 선례를 따라 대안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가 달러 중심의 기존 국제 결제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해도,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동맹 세력인 유로존이 통화 주권을 강화하고 미국 달러가 지배하는 금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디지털 화폐 도입을 시도하는 것도 미국의 패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15]
과거 냉전 시대에는 서방과 공산권 진영 사이에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각각의 진영은 서로 다른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무역 관계도 제한적이었다. 세계화가 이러한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하나의 글로벌 경제를 이루고 있으며, 양국 간 그리고 다국적인 경쟁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은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 중립’ 노선을 택하게 된다.
지경학적 경쟁이 새로운 장애물을 만들고 더 높은 비용과 무역 장벽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효율성이 새로운 가치 창출 기회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위험 관리뿐 아니라 기회를 활용하는 것도 성공하는 사업 전략에 포함해야 한다.[16]
각국 정부와 기업은 미국이 제시하는 다양한 공동 투자 프로젝트를 지경학적 경쟁 노력의 일환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분절된 세계 경제 및 무역 환경은 단순한 지정학적 정렬만이 아니라 위험을 예측하고 분산시키는 노력을 요구한다. 

[1]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서(NSS): 세계관 재편과 그 함의”, INSS 전략보고 No. 370, 2026년 1월 6일

[2] 딜로이트 인사이트, “글로벌 무역과 지경학적 과제”, 2024년 11월 19일

[3] Christopher Clayton, Matteo Maggiori, Jesse Schreger, “A framework for geoeconomics”, Mar. 4, 2024

[4] Edward E. Luttewak, “From Geopolitics to Geo-Economics: Logic of Conflict, Grammar of Commerce”, National Interest, No. 20 (Summer 1990), pp. 17-23

[5] Josh Lipsky, “Geoeconomics, Rediscovered”, Finance & Development, June 2026

[6] The Straits Times, “Taiwan eyes curbs on AI chip sales to China to align with US,” Jun. 10, 2026

[7] Nikkei Asia, “US asks China to resume rare-earth exports to Japan,” Jun. 9, 2026

[8] Christopher Clayton, Matteo Maggiori, Jesse Schreger, op. cit.

[9] Deloitte Deutschland, “Rewiring globalization: Five geoeconomic trends transforming the business environment”, Feb. 12, 2024. 최초에 지수를 산출할 때는 무역 관계(40%), 금융 통합(30%), 지정학적 연계(20%), 사회적 관계(10%)의 4대 축을 사용했으나 2025년 지수 산출 때부터는 무역 관계(35%), 금융 통합(25%), 지정학적 연계(20%) 등 가변 요소들과 문화적 연계(15%), 지리적 근접성(5%) 등 구조적 요인의 조합을 이용한다. Deloitte Geoeconomic Dynamics Index 2025 참조.

[10] Alexander Börsch, “K-shaped globalization: How geopolitics is reshaping trade and investment corridors”, Feb. 13, 2026. 최신 딜로이트 지정학동향지수는 249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5개 차원에 걸쳐 38개 지표를 추적 및 분석한다. 총 6,40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추세를 파악했다.

[11] Ibid.

[12] Ibid.

[13] Tianyu Fan, “Measuring Geopolitical Alignment and Economic Growth”, May 20, 2026

[14] Christopher Clayton, Matteo Maggiori, Jesse Schreger, “Understanding Geoeconomics in a Volatile World”, Finance & Development, June 2026

[15] Ibid.

[16] Soichiro Shibata et al., “Global trade and the new geoeconomic reality”, Deloitte Insights, May 15, 2024 

Deloitte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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