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 바로가기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딜로이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의 최신 경제 뉴스와 트렌드 분석

안녕하세요. 딜로이트 인사이트는 글로벌 경제 및 산업 구도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이슈에 대한 인사이트를 소개하고 최신 경제산업 데이터와 그 함의를 분석한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를 매주 금요일에 발행합니다.

딜로이트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이라 칼리시(Ira Kalish) 박사를 비롯한 딜로이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네트워크(DGEN)가 매주 배포하는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를 통해 중요한 세계 경제 동향을 간편하게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는 국내 유력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부 배포되고 있으며, 딜로이트의 풍부한 경제·산업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플랫폼의 기초 콘텐츠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많은 관심 및 활용을 부탁드립니다.

많은 관심 및 활용을 부탁드립니다.

2025년 7월 2주차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는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에 대해 다룹니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발행 및 거래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가운데 주요국의 법제화를 통해 제도권으로 진입이 임박하자, 주요국 정부와 금융당국은 물론 민간 은행과 기업, 투자자 등 모든 경제 주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중앙화 금융(DiFi) 시스템의 핵심 암호자산(crypto asset, 가상자산)이 기존 금융 제도권으로 편입된다는 것은, 디지털 경제에서 중앙은행 발행 법정화폐가 지배하는 기존 통화제도의 구조가 재편된다는 의미다. 이는 금융 및 자본시장의 기회이자 위기이다.[1]

 개별 법정화폐간 교환 방식을 기반으로 한 국가간 자금결제시장에서 수십년 동안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이 공고해졌지만, 기축통화가 부여하는 막대한 ‘시뇨리지’(seigniorage) 특권을 두고 주요국의 보이지 않는 통화 패권 경쟁이 오랜 역사로 이어져왔다.[2]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성장하자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은 미국에 유리한 암호자산 시장이 자국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특히 자국 통화의 글로벌 영향력이 줄거나 대체되지 않도록 대항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일방적인 관세 부과 정책을 구사하는 이른바 ‘신(新)중상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글로벌 금융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금융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3] 그 핵심이 미국 달러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장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에 대해 ‘스테이블코인 통화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미국 달러화에 대항하고 기회가 있을 때 기축통화 자리를 노리기 위해 1999년 유로화를 출범한 유럽은 현재 미국의 전략을 ‘크립토(암호자산) 중상주의’(crypto-mercantilism)라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개념으로 부르기도 한다.[4]

 미국은 올해 6월 17일 상원 본회의에서 소위 ‘지니어스’(GENIUS: 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of 2025) 법안[5]을 가결하면서 디지털자산인 암호자산(crypto asset)이 제도권으로 본격 편입되는 길을 열었다.[6] 우리나라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이 발의된 상태다.[7] 앞서 일본(개정 자금결제법)과 유럽(암호자산시장 규제법, MiCAR) 등은 이미 관련 법률이 발효되어 규제 프레임워크가 작동 중이다.[8]

 스테이블코인 시장 현황과 미국의 디지털 금융 전략과 주요국 규제, 화폐의 단일성 문제와 중앙은행의 신뢰성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스테이블코인, 암호자산 넘어 지급결제 수단으로 성장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암호자산 시장이 성장하면서 주요 암호자산 거래수단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지급결제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미국이 이를 적극 육성하여 달러화의 지배력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치안정성과 접근성, 거래 효율성 면에서 기존 법정화폐 지급결제시스템의 디지털 혁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주요국의 법제화가 완성될 경우 이용 규모는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9]

 코인게코(Coingecko)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6월말 현재 글로벌 암호자산 시장 규모는 미화 3조 4,600억 달러를 상회하며, 그 중에서 비트코인(BTC)의 비중이 약 61.6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더리움(ETH)의 비중이 8.5%로 그 다음을 차지한다. 스테이블코인은 테더(Tether)의 USDT가 4.55%, 서클(Circle)의 USDC가 1.78%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 전체 규모는 약 2,437억 달러로 암호자산 전체 시가총액 대비 7%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미국 달러 준거형 코인인 USDT와 USDC의 비중이 90%를 차지한다.[10]


 그림 1. 암호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2020.6.~2025.6)

출처: Coingecko. 딜로이트 인사이트


 암호자산 거래에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된 비중은 2017년 12월까지만 해도 7.9% 수준에 그쳤지만, 2025년 5월 현재 84.0%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거래대금이 2025년 1분기 중 일평균 0.73조 원에 달하지만, 글로벌 대비 비중은 0.3% 수준에 그친다. 이는 국내에서 암호자산 거래 시에 실명확인 입출금계좌 이용 의무화 등으로 인해 실명 기반 원화 거래구조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사용 범위가 투자자들의 달러 자산 확보 목적과 국제 송금, 카드 대금결제 서비스 등 일상적인 거래 활용 시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래에는 기업간 B2B 결제와 기관 거래 및 자본시장은 물론 은행 간 유동성 및 재무 거래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11]

 한국은행의 ‘2024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에 등록 계정을 보유한 투자자 수는 1,825만 명 수준으로 집계될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같은 시점 국내 투자자 원화 예치금은 10.7조 원 수준에 달했다. 또한 가상자산 보유금액 및 일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104.1조 원, 17.2조 원 수준으로 집계되었다.


 그림 2. 2024년 말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 현황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량에 상응하는 국채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법정화폐 표시 안전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1:1 연동 메커니즘을 통해 암호자산 생태계와 전통적인 금융시스템이 연결된다. 2025년 1분기 현재 테더와 서클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자산 중 1,785억 달러(81.5%)를 미국 국채로 운용하고 있으며, MMF와 현금 및 예금이 각각 63억 달러(3.0%), 52억 달러(2.5%) 수준을 차지한다. 스테이블코인이 주요국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하여 더욱 크게 활성화되면 이러한 준비자산 규모도 대폭 증가할 것이다.

 미국 씨티그룹은 2025년에 규제 변화에 힘입어 금융 및 공공부문에서 블록체인 채택의 ‘챗지피티 모먼트’(어떤 기술이 갑자기 기대 이상으로 대중적인 인지와 수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는 시점)가 발생할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모가 2030년까지 1.6조 달러(기본 전망)에서 3.7조 달러(낙관적 전망)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본 전망에 따를 경우 발행사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가 2030년까지 현재의 5~6배 수준인 1.2조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12]


그림 3.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시장 추정

출처: Citigroup(2025) 보고서에서 인용. 딜로이트 인사이트


트럼프 정부의 ‘암호자산 중상주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거래 증가로 인해 주된 준거자산인 미국 달러화 자산의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달러화 준거 스테이블코인을 제도적으로 장려하여 글로벌 달러화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전 세계 금융 통화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 국채 수요를 확대하여 막대한 무역 및 재정 적자 문제도 동시에 해결하고자 한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전략과 실행 방안은 언뜻 보기에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재정은 긴축하고, 관세를 부과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통화는 강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지만 되레 달러는 약세로 만들겠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달러화의 특권적인 지위는 절대 손상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전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달러화가 세계 통화의 지위를 잃는다면 전쟁에서 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예전부터 글로벌 안전자산(기축통화) 공급 역할로 인한 달러화 강세가 미국 경제의 막대한 무역 적자를 유발하고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달러 약세를 추구할 것임을 공공연히 천명해왔다. 문제는 달러 약세 추구와 함께 기축통화 지위 유지가 어떻게 병립 가능할 것인가에 있다. 달러 약세 추구를 위해 트럼프는 연준에게 계속 금리를 더 낮추도록 압박을 가하는데, 금리 하락과 달러 약세는 외국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 매력을 떨어뜨린다. 이는 기축통화 위상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이 바로 ‘스티븐 미란 독트린’(Stephen Miran doctrine), 혹은 ‘마러라고 협정 구상’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로 알려지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자리에 오른 미란은 무이자 영구채로 미국 국채를 발행하여 외국인 투자를 요구하고, 관세와 안보보장이라는 협상 지렛대를 활용해 압박하자고 주장한다. 연준의 자발적 협조와 함께 나아가 통화 스와프를 무기로 동원할 수 있다.[13]


 그림 4. 마러라고 협정 도해

출처: 국제금융센터(KCIF), 딜로이트 인사이트


 이러한 구상에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통한 미 국채 수요 확대 전략이 결합된다. 트럼프 정부는 암호자산 준비금을 늘리고 별도의 암호자산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암호자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경우 달러화의 지배력을 위태롭게 하는 자기모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달러 준거 암호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을 앞세운 것이다. 다른 암호자산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고정되어 안정성이 담보될 뿐 아니라, 달러화의 지배력을 더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법제화는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달러화 자산에만 연동되도록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4]

 트럼프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육성 전략은 유럽과 일본, 중국 등 주요 경쟁국의 결제 시스템에서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더 높일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 주요국들은 적극적으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역내 발행과 거래를 규제하는 방어적인 전략 위에서 규제법을 마련하고 있으며, 나아가 자국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장려하고자 한다.  중국은 CBDC 육성 전략을 계속 추구하면서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계속 차단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글로벌 상호운용성의 문제로 인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국제화 과정은 기존 법정화폐 지급결제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프리뱅킹 시대’: 단일성 문제와 규제 필요성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장은 암호자산 시장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되기 이전 개별은행이 화폐로 통용되는 민간 은행권(private banknote)을 발행하던 ‘프리뱅킹 시대’(free banking era)에 비유될 정도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프리뱅킹 시기에 민간 은행권은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최대 20%까지 할인되어 거래되는 등 화폐의 ‘단일성’(singleness)과 안정성이 붕괴되었다. 단일성이란 화폐 사용자가 동일한 가치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한다. 스테이블코인도 플랫폼간 환율 편차, 변동성, 발행 구조 상 문제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15]

 따라서 내재된  구조와 코드로 자동으로  검증과 실행이  되는 ‘구조 기반 신뢰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프리뱅킹’ 시대에도 화폐 단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급 및 상환의 안정성에 대한 높은 신뢰를 확보해야만 한다. 중앙은행이나 공식기관이 발행한 디지털 무기명증서 방식의 디지털화폐가 준거 역할을 할 경우, 이에 기초한 민간 스테이블코인도 원활한 민간 디지털화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의 화폐를 표방하는 BTC, ETH 등 각종 암호자산 자산은 급격한 가치변동성과 가치평가기준의 부재로 인해 법정화폐와 직접 교환되는 화폐로 인정받지 못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법정화폐 등 준거자산과 연동을 통해 가치안정성을 확보하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한 것이다.[16]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엔, 유로 등 법정화폐 혹은 다양한 암호화폐, 원자재 상품 등을 준거 자산으로 발행되는 담보형과, 코인의 수급 조절을 블록체인 상의 알고리즘으로 수행하는 무담보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여기서는 담보형 중에서도 법정화폐 준거형 코인에만 주목한다. 주요국 규제법안에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자국 법정화폐와 지급결제시스템과 스테이블코인의 관계 설정은 공통적이다.

 궁극적으로 정부와 금융당국은 법정화폐와 민간화폐로 이루어진 이중 통화제도로 운영되는 기존의 통화 시스템 제도를 유지하되, 디지털 경제 시대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이를 기초로 하는 민간 디지털화폐의 상호보완적 구조를 확립하여 금융 안정성과 효율성 및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기 때문이다.[17]

 일본은 앞서 2022년 ‘제4회 개정 자금결제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암호화폐형’과 ‘디지털머니 유사형’으로 구분하고, 후자를 ‘전자결제수단’의 일종으로 정의하여 발행자를 규제한다. 암호화폐형은 별도의 발행자 규제 없이 기존 암호화폐 규제를 적용한다. 일본 정부는 올해 3월에 다시 암호자산‧전자결제수단과 자금이동업에 관련된 규제를 개선하는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18]

 유럽은 2023년 ‘암호자산시장 규제법’(MiCAR)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 E-Money Token)과 ‘자산준거토큰’(ART, Asset-Referenced Token)으로 구분한다. EMT는 단일 법정화폐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말하며, ART는 복수의 법정화폐나 원자재 등 기타 자산에 연동된 복합담보 스테이블코인이다. 유럽은 이들 두 가지 스테이블코인 모두에 대해 광범위하고 엄격한 발행규제를 적용하고 있다.[19]

 미국의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국가 혁신 유도 및 확립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지니어스 법안’의 경우 규제 대상을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으로 한정하여 이를 ‘법정화폐나 기타 안전한 자산에 준거하도록 하여 고정된 가치를 유도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정의하고 발행 및 인증 요건을 부과한다. 미국 의회의 해당 법안에 대한 요약 설명에서는 간단히 “발행자가 고정된 통화 가치로 상환해야 하는 디지털 자산”이라고 못박고 있다.[20]

 우리나라는 1단계 법률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암호자산)의 발행과 유통, 공시 등에 대해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디지털자산 기본법’ 발의에 이어 ‘디지털자산 혁신법’(디지털자산 시장의 혁신과 성장에 관한 법률)이 각각 발의된 상태다.

 법안 명칭에서 보이듯 기존에 사용하던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는 디지털자산으로 좀더 현실적이고 포괄적인 호칭을 사용한다. ‘기본법’ 발의 내용에 따르면, 디지털자산은 ‘분산원장에 디지털형태로 표시되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며, 전자화폐와 같은 것은 이러한 분류에서 제외된다. 디지털자산 중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은 인가제로, 일반 디지털자산의 발행은 신고제로 각각 규정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에는 금융위원회의 인가, 자본금 5억원 이상으로 설정했다. ‘혁신법’의 경우 발행 요건은 자본금 10억원 이상을 포함하는 12개 요건을 적용해 기본법 발의 내용보다 강화하고, 특히 해외에서 발행된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발행 규제를 적용했다. 외화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도 사업자가 국내에 진입하려 할 경우 디지털자산업자 영업행위 관련 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21]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은 자국 통화공통적으로 암호화폐형이나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담보 불투명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을 높게 세우고 있다. 주요국은 앞으로 자국의 중앙은행 및 통화당국을 통해 국제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해외 발행된 스테이블코인과의 상호운용성을 목적으로 규제하는 다른 관할권과 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함으로써 글로벌 공통 규제를 만들어 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 시대의 ‘신뢰’ 문제

통화 시스템에서 기술의 발전은 경제 활동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의 장부 기록 관리를 통한 명목화폐로 혁신이 무역과 상업의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금융 수단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종이 원장은 디지털 원장으로 대체되었고, 명목화폐는 종이 지폐가 아니라 디지털 계좌에 숫자로 찍히면서 공급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토큰화 기술에 힘입어 새로운 진화와 발전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이러한 혁신과 발전이 중앙은행 화폐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뢰를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가 아무런 의심 없이 액면가로 결제할 수 있다고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화폐의 ‘단일성’이 중요하다. 그 위에 결제 수요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는 탄력성과 함께 시스템의 무결성이 결합되어 화폐의 기본 속성 기준이 완성된다.[22]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주로 암호자산 거래를 위해 선택되어 온 ‘디지털 무기명 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은 가명성에 기반해 무결성 보호장치를 우회한다. 또한 전환율이 실시간 변동성을 보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늘 액면가로 지급결제될 것이라는 단일성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 나아가 명목상 동등한 가치의 자산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추가로 발행할 때는 보유자가 전액 선불 결제해야 하는 현금 선지급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수급 탄력성도 떨어질 수 있다.

 한편, 주요국 규제 동향에서 보이듯이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안정에 미칠 영향은 기존 정책 당국이 적극 제어하고, 특히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민간의 발행 및 참여가 제한된다. 미국처럼 기축통화 발행국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으로 진입할 경우 법정화폐 주조 차익인 ‘시뇨리지’의 감소와 함께 통화정책 유효성의 제약, 금융 위기 발생 위험 추가에다  궁극적인 통화 대체 위험과 싸워야 한다. 이러한 점은 통화 주권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화 대체 또는 화폐 대체는 자국통화 대신 혹은 자국통화와 병렬로 외국 통화나 다른 통화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외국 통화가 달러나 유로인 경우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혹은 ‘유로이제이션’(euroization)이라고 한다. 통화 대체는 부분적 혹은 완전히 시행될 수 있는데,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짐바브웨 등은 경제 위기 이후 완전한 통화 대체를 시행한 국가들이다. 대체한 통화가 법정 통화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 비공식 통화 대체 또는 사실상 통화 대체라고 부른다. 앞서 파나마는 1904년에 법정 통화로 미국 달러를 채택해 공식 통화 대체 혹은 완전 통화 대체를 시행한 국가이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의 대체재이기 때문에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게 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고 민간 자금이 유입될 경우 통화 공급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더불어 외환시장 및 자본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출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네 가지 잠재 리스크를 ▲’코인런’ 리스크 ▲’결제 및 운영’ 리스크 ▲’외환거래 및 자본유출입’ 리스크 ▲’통화정책 유효성 제약’ 리스크 등으로 정리해 발표했다.[23]

 현재 발행된 스테이블코인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테더와 서클도 본질적으로는 ‘불안정한 민간화폐’다. 가치 안정성이나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거나 기술 오류 및 관련 범죄 등이 나타날 경우 ‘디페깅’(de-pegging, 코인 가치가 연동 자산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 및 대규모 상환 요구(코인런)가 발생할 수 있다. 일례로 서클의 경우 준비자산 중 8%를 예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당시 1코인 당 0.88달러까지 추락하는 디페깅이 발생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코인런’이 발생할 경우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해당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한 금융기관은 투자 손실 및 담보가치 하락 위험에 노출되고,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준비자산을 대량 매각할 경우 해당 자산 가격이 급락할 수 있고 또한 준비자산이 은행 예금인 경우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인한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24]

 또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달러화 등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우 환율 변동성 및 자본유출입 확대로 인한 외환 리스크가 증대될 수 있다. 나아가 화폐 대용재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득세할 경우 파장은 더욱 크고 통화 주권에 위협이 된다. 이 때문에 일본과  유럽 그리고 중국 등 주요국은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역내 발행 및 유통을 제한하는 규제를 통해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국 통화가 기축통화의 지배력을 쉽게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암호자산 중상주의’ 전략이 큰 실수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25] 기축통화 발행국이라는 지위 덕분에 미국은 저금리로 차입하고, 대규모 무역 적자를 유지할 수 있으며,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쉽게 돈을 찍어낼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엄청난 특권’이란 불평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 부과와 연준에 대한 금리인하 압박을 통해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한편 공공 재정을 지속 불가능한 길로 몰아넣는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몰아 부치는 등 신용등급 강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서 채무 약속 이행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했다. 실제로 법안에는 미국 국채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에게 최대 20%의 보복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했다. ‘마러라고 협정’ 계획에는 100년물 무이자 국채를 사도록 강요하자는 방안도 들어있다.

 금융시장은 이러한 미국을 신뢰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는 와중에 달러화 가치는 10% 이상 하락한 것이 시장의 신뢰 추락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관세 부과가 달러화 가치를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반대 움직임이다. 이 와중에 국제 금 시세가 6개월 만에 25% 넘게 급등한 것은 혼란 와중에도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의 도피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스테이블 코인 통화 패권 경쟁, 새로운 기회?”, 2025년 6월 13일

[2] 딜로이트 인사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 “흔들리는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2025년 5월 3주차

[3] The White House, “Fact Sheet: President Donald J. Trump Establishes the Strategic Bitcoin Reserve and U.S. Digital Asset Stockpile”, Mar. 06, 2025

[4] Monnet, E (2025), “Cryptomercantilism: Donald Trump's monetary doctrine”, SUERF Policy Brief. 1139, Apr. 10, 2025

[5]Congress.gov, “S.394 - GENIUS Act of 2025, 119th Congress (2025-2026)”, Feb. 04, 2025

[6] 연합뉴스, “스테이블코인 날개다나…美상원서 '지니어스' 법안 통과”, 2025년 6월 18일

[7] 연합뉴스, “與민병덕, '원화 스테이블 코인 허용'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 2025년 6월 10일. 해당 법안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정책 조율을 하도록 하고 디지털자산 발행을 법률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8] Hashed Open Research(HOR), “디지털G2를 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설계도”, 2025년 5월 29일 참조

[9]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25년 6월)”, 2025년 6월 25일

[10] Coingecko, “Global Cryptocurrency Market Cap Charts”, accessed Jul. 10, 2025

[11] 한국은행, op. cit

[12] Citigroup, “Digital Dollars: Banks and Public Sector Drive Blockchain Adoption”, Apr. 23, 2025

[13] Stephen Miran,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Hudson Bay Capital Nov. 2024

[14] Monnet, E (2025), op. cit.

[15] BIS, “Stablecoins versus tokenized deposits: implications for the singleness of money”, Apr. 11, 2023

[16] 한국금융연구원, “스테이블코인의 새로운 분류및 제도화 방안”, 2025년 5월 13일

[17] 김영식, “CBDC, 스테이블코인과 통화제도”, 2025년 5월 13일

[18] 자본시장연구원, “일본의 암호자산 규제 동향”, 2025년 7월 7일

[19] 한국금융연구원, “EU의 MiCA 시행에 따른 테더와 서클의 대응전략 및 시사점”, 2025년 5월 10일

[20] Congress.gov, “S.394 - GENIUS Act of 2025, 119th Congress (2025-2026)”, Feb. 04, 2025

[21] 뉴스1, “기본법 이어 디지털자산 혁신법 발의…스테이블코인 자본금 5억→10억”, 2025년 6월 17일

[22] BIS, “Annual Economic Report 2025: III. The next-generation monetary and financial system”, Jun. 24, 2025

[23] 한국은행, op. cit.

[24] Ibid.

[25] Desmond Lachman, ”The End of America’s Exorbitant Privilege”, Jul. 07, 2025

유용한 정보가 있으신가요?

의견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