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도자들은 저렴한 주택 공급 증대, 에너지 회복력 강화, 경제 번영 등 원대한 목표와 정부 역량의 한계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순히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하거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이를 넘어 정부 운영 메커니즘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속도와 효과성,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시민들의 기대치가 날로 높아지고,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격동의 시대에 정부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i] 이는 단순한 ‘거버넌스 개선’ 요구가 아니다. 공공관리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이다. 정부는 민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해야 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21세기형 효과적 통치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현재, 정부 지도자들의 최대 과제는 약속과 성과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는 것이다.
■ 과거와 달라진 정부 성과의 의미
정부의 성과 창출 임무는 역사가 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성과를 내는 것은 오래전부터 정부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임무로 작용했다. 수십 년 전부터 많은 국가들은 정책 설계와 집행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고도로 구조화된 접근 방식을 도입했다.[ii]
미국은 2001년 ‘대통령 경영 의제’(President’s Management Agenda)를 발표해 정부 효율성 개선의 기초를 마련하고 책임성과 실행을 강조했다.[iii] 같은 해 영국은 총리 직속 성과관리실(Prime Minister’s Delivery Unit)을 신설해 공공서비스 개혁의 집행 속도를 점검 및 촉진했다.[iv] 캐나다,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가나, 코스타리카 등 여러 국가들도 이 모델을 모방했다.[v] 이들 정부 조직들은 성과 지표와 계량화된 결과를 도입해 공공서비스의 실행력을 높이고자 했다.[vi]
하지만 초기에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적 관심이 줄어들고 수년 내 다수의 성과관리 조직이 폐지됐다.[vii]
그러나 최근 들어 성과 창출은 다시금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우선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viii] 다만 오늘날 정부는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지속적인 개선 노력과 책임성, 혁신 문화를 조성하는 전환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유능한 리더십이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하며, 결과 지향적 사고방식과 태도를 정부 조직 전체에 내재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과 구성원의 적응력을 우선적으로 강화하고, 변화하는 도전에 직면해도 정부 조직이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 성과 향상을 위한 도구와 전략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정책-집행 간극 해소, 성과 속도 향상, 복합적 과제 대응, 디지털 역량 강화 등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성과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딜로이트 정부 인사이트 센터(Deloitte Center for Government Insights)는 2019년부터 매년 ‘글로벌 정부 트렌드’ 보고서를 발간하며, 정부가 직면한 도전 과제와 대응방식의 변화 양상을 추적해왔다. 이 가운데 일부 트렌드, 예컨대 디지털 정부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등장한 단골 이슈이며, 최근에는 삶의 질과 AI 등 주제가 부각되고 있다. 2025년 보고서는 정부의 성과 개선을 위해 주력해야 할 9대 핵심 트렌드를 제시한다.
트렌드 1.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가치를 구현
전 세계 다수의 정부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라는 시민의 요구와 만성적 재정 압박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세수 둔화,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 부채 이자 급등이 겹치며 많은 국가가 불안정한 재정 경로에 놓였다.[xxiv] 과거처럼 채용 동결, 출장 축소, 교육·유지보수 보류 등 단기적 조정으로는 임무 수행에 필요한 근본적 비용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이에 각국은 운영 효율화, 구조적 전환, 수요 관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공공부문 경제학을 재설계하며, AI와 디지털 인프라를 결합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비용 절감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 정부 부채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자지출이 방위비를 추월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상회했고,[xxvxxvi] 미국은 GDP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xxvii]
캐나다의 지방 재정도 빠르게 악화하며 기록적 부채 증가가 예고됐다.[xxviii] 이러한 환경에서도 각국 정부는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을 실행함과 동시에 필수 공공서비스의 질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기술 부채(tech debt)와 비효율적 조달, 조직 사일로, 부정확한 원가 데이터 등 고질적 문제가 자원의 합리적 재배분과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현 시대 정부는 ‘예산의 회계학’이 아니라 ‘임무의 경제학’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1. 운영 효율화
운영 효율화는 업무 방식과 프로세스, 데이터 및 기술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접근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AI, 생성형 AI, 에이전틱 AI를 활용한 자동화 및 증강 △프로세스 재설계(BPR) △사기·낭비·오남용(FWA, fraud-waste-abuse) 감축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통합 등의 솔루션을 활용할 수 있다.
운영 효율화의 실질적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술 도입에 앞서 업무 재설계와 역량 강화 및 인사정책 업데이트가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만 도입하고 절차와 역할, 지표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대했던 효율성은 나타나기 어렵다.
2. 구조적 전환
구조적 전환은 공공서비스의 공급 구조와 소유·운영 방식 자체를 손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기관 통합, 공유서비스, 자산 민영화와 공공-민간 파트너십(PPP), IT·데이터센터 통합, 부동산 포트폴리오 재편 등이 포함된다.
구조적 전환의 관건은 서비스 질 유지와 정치·사회적 수용성이다. 이해관계자와의 입장 조율, 명확한 효과 지표, 단계적 이행 로드맵이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3. 수요 관리
수요 관리는 정부 프로그램 자체의 필요성과 이용 행태를 바꾸어 장기 부담을 낮추는 접근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근로 연계 복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 active labor market policy), 예방·가치 기반 의료 등의 솔루션을 이행할 수 있다.
수요 관리는 단기 성과가 작게 보일 수 있으나, 거시적 장기 비용 곡선을 낮추는 핵심 수단이다. 이의 성공을 위해 데이터 기반 타깃팅, 행동과학(넛지) 적용, 지역사회·민간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의 비용을 줄이고 가치를 증대하는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돈을 더 적게 쓰기 위함이 아니다. 정부 임무 수행의 방정식을 재작성하여, 같은 자원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내는 지속 가능 생산성 혁신이다. AI와 디지털 인프라, 공유서비스와 PPP, 예방 중심 복지·보건, 데이터 기반 거버넌스를 결합하면, 정부는 재정 건전성과 서비스 품질, 시민 신뢰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용기와 실행의 일관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득하는 태도다. 지금이야말로 예산의 단기 미세조정보다 임무의 구조적 재설계로 나아갈 시간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가치를, 더 넓은 포용성과 더 나은 시민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트렌드 2. AI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정부
전 세계 정부는 AI의 혁신적 잠재력을 갈수록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잠재력을 실질적 성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조직 전체로 AI 도입을 확대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다수 정부 기관은 여전히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고, 생성형 AI 또한 대규모로 적용할 수 있는 체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익보다 공공책임과 위험 관리를 우선하기 때문에 민간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 따라서 AI의 대규모 도입은 정부 특유의 ‘사명 중심 경로’를 따라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술과 윤리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정부 리더 중 ‘자신의 조직이 높은 수준의 생성형 AI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산업계의 32~56%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l]
전문성이 부족하면 AI 모델 선택, 데이터 정제, 보안·저장 구조 설계 등 기술적 의사결정이 어렵다. 더 큰 문제는 ‘AI 관심의 비대칭성’이다. 민간에서는 경영진이 AI 도입을 주도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현장 직원들이 먼저 AI를 시도하려 하고 리더들은 위험을 우려하며 소극적이다.
결과적으로, 조직 내 60% 이상의 직원이 생성형 AI에 접근할 수 있다고 답한 정부 기관은 전체의 1%에 불과했다.[li] 즉, 공공부문에서 AI는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위로부터의 제약’ 사이에 갇혀 있는 셈이다.
AI가 가져올 공공부문의 변화는 실로 거대하다. 그러나 AI 도입이 미흡하면 정책 효과가 제한되고, 무분별하면 공공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이른바 규모 확대의 역설(scaling paradox)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이 AI를 성공적으로 대규모 도입한 사례는 이미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시(Buenos Aires) 정부는 2019년 처음 챗봇을 도입한 후 2022년까지 지속적으로 개선해, 주민들이 사회보장 서비스 이용, 건축허가 신청, 도로 보수 신고까지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챗봇은 연간 5,800만 건 이상의 대화를 처리하며 24시간 행정서비스를 제공했다.[lii]
미국 재무부는 AI 기반 사기 탐지 도구를 활용해 40억 달러 규모의 부정지급을 방지하거나 회수했다. 재무부의 ‘지급 금지 작업 시스템’(Do Not Pay) 데이터베이스는 주정부 실업급여기관, 사회보장국 사망기록과 연동해 부정수급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liii]
이러한 사례는 AI의 효과를 입증하는 동시에, AI는 단순 도구가 아니라 행정의 핵심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특성상, 단 한 번의 오류가 시민 신뢰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AI 도입 확대는 단순한 기술 확대가 아니라 책임성의 문제라는 점이 강조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 프로세스와 정성적 결과 중심 성과 측정이 수반돼야 한다.
1) 인간 중심 프로세스: 공무원의 AI 역량 강화
효과적인 AI 도입의 출발점은 사람이다. 인간 구성원들이 AI의 원리와 한계를 이해해야만 시스템의 오작동을 감지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AI 리터러시(AI literacy) 수준은 역할에 따라 다르게 설계되어야 한다.
우선 일선 사용자는 도구의 기능을 익히는 수준이면 충분하고, 중간관리자는 어떤 도구를 선택하고 평가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와 개발자는 AI를 직접 설계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빌드(build)-선택-활용’의 3단계 모델은 조직 전체의 AI 이해도를 균형적으로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실패를 부르고, 사소한 실패 하나가 조직 전체의 시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각자의 수준에 맞는 ‘현실적 기대 관리’ 또한 AI의 대규모 도입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2) 정성적 결과 중심 성과 측정: 임무 중심의 새로운 지표
정부의 AI 투자는 효율성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공공 임무 수행의 개선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투자 효과를 측정하지만, 정부는 범죄 감소, 복지 지급의 정확성 향상, 시민 응답시간 단축 등 정성적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
AI가 단일 업무를 자동화할 경우 시간·비용 절감을 측정하는 지표가 유효하다. 그러나 AI가 정책 전체의 성과를 개선한다면, 임무 중심 성과(mission performance) 지표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미국 뉴저지주(New Jersey) 정부는 ‘뉴저지 AI 어시스턴트’(NJ AI Assistant)를 도입해 행정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AI 시스템은 주 내부 인프라에서만 운영되며, 데이터 주권과 보안이 철저히 관리된다. 결과적으로 노동부의 주민 응답률은 35% 향상됐고, 세무부 콜센터의 문제 해결률은 50% 증가했다.[liv]
이처럼 AI 프로젝트는 효율성뿐 아니라 공공성과 안전성의 이중 목표를 달성해야 진정한 성공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 호주와 싱가포르 사례
호주 디지털전환청(DTA)은 약 7,600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비서를 시험 운영했다. 그 결과, 직원들은 행정 업무 시간을 하루 평균 1시간 단축했으며, 업무 만족도와 효율성도 개선됐다.[lv]
싱가포르는 2023년 12월 ‘국가 AI 전략 2.0’을 발표하며, 기존의 기술 중심 정책을 넘어 AI 인력 재교육과 산업 인프라 확충을 핵심 축으로 삼았다. 특히 ‘AI 트레일블레이저스’(AI Trailblazers) 프로그램을 통해 100일 동안 100개의 생성형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공공과 민간이 생성형 AI를 공동으로 학습 및 확산하는 생태계를 조성했다.[lvi]
이러한 사례는 정부가 AI를 위에서 주도하는 기술 혁신이 아닌 공무원과 시민이 함께 진화를 주도하는 공공 혁신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공공부문의 AI 도입을 가속화하려면 세 가지 기반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1) AI 플랫폼과 마켓플레이스 구축
정부 내 AI 플랫폼은 기술적 기능(데이터·모델 관리)과 조직적 기능(검증·확산 체계)을 통합해야 한다. 미 국방부의 ‘조인트 커먼 파운데이션’(Joint Common Foundation)은 대표적인 대규모 정부 AI 운영 플랫폼 사례로 꼽힌다. 미 국무부 또한 소규모 AI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해 혁신적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 및 확산하고 있다.[lvii]
2) AI 전문성 강화와 인증제 도입
모든 공무원이 AI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기본 수준의 이해는 필수다. 미국 연방정부는 ‘연방 AI 인스티튜트’(Federal AI Institute)를 중심으로 인증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정부 전반의 AI 리터러시를 체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lviii]
3) 민관 협력 네트워크 강화
빠르게 진화하는 AI 생태계를 정부가 독자적으로 따라잡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술 기업 및 학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이는 단기적으로 기술 리스크를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주권형 AI(sovereign AI)와 같은 정부 전용 모델 수요를 형성한다. 또한 최고AI책임자(CAIO) 협의회, 최고정보책임자(CIO) 협의체 등 정부간 네트워크를 수립하면 예산이나 선거주기 등 행정 특유의 제약과 상관없이 경험과 노하우를 활발하게 공유할 수 있다.
AI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속도 보다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는 단기 효율성보다 장기적인 국민 신뢰를 우선해야 하며, 공공 가치와 비용, 혁신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AI는 행정의 속도를 높이는 도구이자, 동시에 정책 판단의 품질을 높이는 지능이다.
이제 정부가 선택해야 할 것은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공공의 사명에 맞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다. 정부 AI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을 국민을 위해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렌드 3. 불필요한 행정 요식 부담 완화
정부는 규제와 절차의 복잡성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인 프로세스 개선, 인력 교육, 이해관계자 참여, 디지털 도구 활용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단순히 행정 부담을 낮추는 것을 넘어, 공공 안전, 환경 보호, 공공재정의 신중한 운영 등 규제가 본래 담고 있는 보호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을 촉진하는 균형을 이루는 핵심 과제에 직면해 있다.
■ 정부-기업: 규제 경험 단순화로 사회적 혁신 촉진
기업과 정부 간 관계는 규제의 복잡성 때문에 종종 긴장 상태에 놓인다. 크고 작은 기업들은 서로 다른 정부 기관이 요구하는 중복된 절차와 규칙 속에서 성장의 발목을 잡히기 일쑤다. 특히 소상공인은 사업 확장을 위해 수많은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각각의 서류와 일정이 달라 행정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게 소요된다. 정부가 혁신을 촉진하려면 바로 이 규제 경험(regulatory experience)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규제는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넘어, 기술과 인간 중심 설계를 기반으로 혁신의 촉매로 전환하고 있다. AI 기반 규제 분석, 데이터 통합, 민관 협력형 거버넌스, 허가 절차의 디지털 전환은 모두 사회 혁신 역량을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다. 즉, 규제 혁신은 단순한 행정 효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공공 신뢰 회복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 인간 중심 설계로 규제 재구성
규제 혁신은 단순히 규제를 줄이는 ‘탈(脫)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Ontario)의 미셸 디에마누엘(Michelle E. DiEmanuele) 내각사무총장은 “규제를 없앨까 말까가 아니라, 산업과 시민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를 묻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lix 싱가포르는 부처간 위원회를 설치해 현행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기업 단체와 협업해 절차를 단순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lx] 특히 중소기업이 겪는 병목 구간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지원 사무국을 운영 중이다.[lxi] 일례로 싱가포르 민간항공청은 드론 라이트쇼에 적용되는 허가 절차를 개편했다. 기존에는 드론 1대마다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해 1,000대 규모의 공연이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업계 의견을 반영해 ‘공연 단위 허가’로 전환한 결과, 2만 달러를 넘던 허가 비용이 수백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lxii]
2. 생성형 AI를 활용한 규제 혁신
머신러닝과 생성형 AI는 규제 체계를 단순화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복잡한 법령 문서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고, 일반 시민이나 기업이 이해하기 쉬운 평이한 언어로 요약하는 ‘놈 엔지니어링’(norm engineering)이 주목받고 있다.[lxiii]
미국 오하이오 주는 ‘이노베이트 오하이오’(InnovateOhio) 프로그램을 통해 AI로 행정 규정을 전수 분석했다.[lxiv] 그 결과 불필요한 단어 200만 개, 중복 규정 900건을 발견해 건축법규에서만 60만 단어를 삭제했다. 서류 제출과 대면 절차 의무도 다수 폐지돼, 주정부는 2033년까지 4,400만 달러의 예산과 5만 8천 시간의 행정 노동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lxv]
3. 주택 규제 완화로 사회 문제 해결
규제 단순화는 기업 편의뿐 아니라 사회적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주택 공급 부족과 비용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있다.[lxvi]
뉴질랜드는 해외 건축자재 사용 승인 절차를 완화하고, 원격 검사를 허용해 건설 비용을 낮췄다.[lxvii]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감속 규제 전담 장관’을 두고 불필요한 서류를 줄여 개발업자의 행정비용을 매년 수억 달러 절감시켰다.[lxviii]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는 신규 주택 승인 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lxix]
■ 정부-시민: 대민 서비스의 간소화 혁신
정부-시민 간 행정 서비스는 ‘간단하고 빠른 접근’을 목표로 디지털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과거처럼 복잡한 서류 제출과 중복 정보 입력, 긴 대기 절차 대신 기술 기반의 간소화가 확산 중이다.
영국 정부는 GOV.UK 전자 양식을 도입해 종이 양식을 없애고 온라인으로 모든 절차를 처리하도록 했다. 이 도구로 2만 명 이상의 군 복무자가 간편하게 참전 배지를 신청했다.[lxx] 또한 데이터 연계로 반복 제출을 줄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IDEAL 디지털 신원 시스템은 부처간 정보를 API로 공유해, 주거지원 신청 시 필요한 서류를 자동 조회할 수 있게 했다.[lxxi]
AI와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를 활용한 행정 업무 단축 사례도 있다. 잉글랜드 하트퍼드셔 커뮤니티 국민건강보험 트러스트(Hertfordshire Community NHS Trust)는 아동 치료 서비스 신청 절차를 자동화해 오류와 지연을 크게 줄였다.[lxxii]
‘신청하지 않아도 받는 서비스’도 발전하고 있다. 인도 카르나타카주(Karnataka)는 국가 디지털 신원 플랫폼 아드하르(Aadhaar)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 소득 이하의 고령자에게 노령연금을 자동 입금한다.[lxxiii]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신청서 단순화, 데이터 공유, 자동화, 선제적 복지 제공을 통해 행정 효율과 시민 경험을 동시에 개선하는 정부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 정부-정부: 내부 관료주의의 숨은 비용 제거
정부간(G2G) 행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비용’, 즉 내부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하버드 법대 교수는 이를 ‘슬러지’(sludge), 즉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마찰 요인으로 정의했다.[lxxiv] 이러한 행정적 마찰은 부패 방지와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선의의 규제가 쌓이며 복잡한 절차와 위원회, 승인 체계로 변질된 결과다. 그 결과 생산성 저하, 사기 저하, 혁신 둔화, 책임 불명확, 번아웃 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정부 직원은 매년 5억 시간 이상을 단순 기록 업무에 쓰고 있으며,[lxxv] 민간 근로자 역시 비효율적 절차와 중복 회의로 연간 12주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lxxvi]
내부 행정의 효율화를 위해 정부는 현장 피드백 체계 구축, 성과 기반 인센티브 도입, 디지털 자동화 및 생성형 AI 활용, 불필요한 규제·절차의 주기적 폐지 등을 추진해야 한다. 결국 내부 관료주의에 따른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하는 일은 단순한 행정개혁이 아니라, 정부의 생산성과 국민 신뢰, 공공 혁신 역량을 되살리는 핵심 전략이다.
1. 일선 직원의 목소리에서 해법 찾기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현장 직원의 불만을 정책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 결과 2023~2024년 1,240만 달러의 비용 절감, 540만 달러의 비용 발생 예방, 17년치의 업무시간 절감을 달성했다.[lxxvii]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경찰은 ‘블루 테이프’(blue tape), 즉 경찰 행정 서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술·정책·법령 개선안을 100여 개 제안해 시행 중이다.[lxxviii]
2. 절차 감축 프로그램의 도입
한국은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1년 만에 규제를 50% 감축했다. 모든 규제를 등록·코드화하고, 새 규제 도입 시 기존 규제를 반드시 폐지하도록 의무화했으며, 5년 유효기간(선셋 조항)을 도입했다.[lxxix]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최근 ‘제로 관료주의’(Zero Government Bureaucracy) 프로그램을 시행, 2024년 말까지 2,000건의 행정 절차를 폐지하고 처리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lxxx]
3. 생성형 AI로 반복 업무 자동화
미국 국방부는 Acqbot이라는 AI 계약서 작성 챗봇을 개발 중이다. AI가 초안을 작성하고 담당자가 검토·승인하는 방식으로, 수작업 중심의 조달 절차를 대폭 단축한다.[lxxxi] 이러한 기술은 단순 업무를 줄여 공무원이 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임무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불필요한 행정 요식의 축소는 단순히 규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안전, 환경보호, 공공재정 책임성이라는 규제 본연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절차적 부담을 낮추고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다. 내부 조직 문화와 프로세스 변화 없이 외부 절차만 바꿔서는 지속 가능한 성과를 얻기 어렵다. AI, 디지털 플랫폼 등 기술적 도구를 활용하되, 보완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설계, 운영해야 한다. 또한 각 정부 기관 및 규제 기관 간 사일로를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 협업, 통합, 데이터 공유 없이는 병목 현상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현장 직원 및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히 위로부터 명령하듯 개혁하는 것보다, 현장 참여형 설계가 더 효과적이다.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절차, 시간, 비용의 절감이라는 측면을 넘어 시민-기업-정부 간 상호작용 경험 개선, 혁신 활동 촉진, 내부 운영 효율화라는 다층적 목표를 지향한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 조직, 설계, 데이터 등 다양한 축에서 전략을 통합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트렌드 4. 공공서비스 현대화, 신뢰 회복의 열쇠
세계 각국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과 물리적 서비스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 기술 기반 고객경험(CX)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국민의 기대 수준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공공서비스는 복잡한 절차와 대면 중심의 구조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더디다.
공항 보안검색, 각종 인허가, 사회보장 수급 신청 등은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대면 절차가 필요하다. 이런 구조는 처리 속도를 늦추고 오류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의 디지털화 과제는 결국 ‘등록 자체보다 더 까다로운 등록 절차’를 없애는 것이다. 자동차 등록이 차량 렌트만큼 간편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2년 딜로이트의 글로벌 시민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정부 서비스 만족도는 민간 부문보다 20%포인트 이상 낮은 56%에 그쳤다.[lxxxii] 완전 온라인 서비스뿐 아니라, 디지털과 물리 서비스가 결합된 분야에서는 격차가 더 크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정부 CIO의 70% 이상은 2026년까지 시민경험(CX) 측정 투자 확대를 계획 중이다.[lxxxiii]
공공서비스 혁신의 장애 요인은 크게 네 가지이다.
1. 빠른 서비스 제공
2. 비용 절감
3. 서비스 품질 개선
효율성 향상은 단순히 속도와 비용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체감 만족도와 직결된다. 서비스 설계가 사용자 중심일 때 자연스럽게 접근성이 높아지고, 후속 대응이나 민원도 줄어든다.
더 빠르고, 더 저렴하며,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다음의 6가지 실천 전략을 제시한다.
공공서비스 현대화는 단순한 전산화나 업무 효율화가 아니다. 이는 국민이 체감하는 정부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여권을 빠르게 발급받거나, 복지 지원을 간편히 신청할 수 있을 때 국민은 ‘정부가 내 시간을 존중한다’고 느낀다. 반대로 불필요한 대기와 중복 절차는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부는 속도, 비용, 품질의 균형 속에서 시민경험을 재설계해야 한다. 사용자 중심 설계와 책임 있는 AI 활용, 데이터 통합과 투명한 협업, 조직문화 혁신이 병행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현대화가 완성된다.
공공서비스의 미래는 ‘디지털 정부’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정부’다. 디지털이 물리적 경험을 대체하기보다는, 시민의 여정을 더 매끄럽게 만드는 보완적 수단이 될 때 비로소 정부는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운영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혁신, 즉 시민 경험을 중심에 둔 공공서비스 현대화다. 이것이 바로 효율적인 행정과 함께 ‘신뢰받는 정부’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트렌드 5. 미래에 대비하는 인프라 개발의 최적화
도로, 철도, 교량, 상하수도, 전력망, 데이터센터, 송전선, 변전소, 하수 처리장은 일상과 산업을 떠받치는 필수 기반이다. 파나마 운하 개통이 글로벌 해상 물류 지도를 바꿨고,[xcv] 미국의 주간고속도로망은 국가 경제와 문화 구조 자체를 바꿨으며,[xcvi]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 철도인 채널터널(Channel Tunnel)은 역내 연결성을 재편했다.[xcvii] 이런 초대형 사업 외에도 전 세계의 모든 주·도·시·군 단위에서 수많은 중소 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며 지역 경제활동과 생활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짓는 것’보다 ‘제대로, 제때, 예산 안에서 짓는 것’이다. 다수의 인프라 사업은 공사 기간이 지연되고 예산이 초과된다. 부정확한 사업 범위 기획, 인력난, 기술 변화, 예산 부족, 이해관계자간 조정 실패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인프라 투자는 착수를 선언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이후 수년간의 유지·보수, 성능 업그레이드, 안전성 확보가 더 어려운 과제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들이 겹친다. 첫째, 기후 변화와 극단적 기상이 이제 인프라 개발 시 고려해야 할 필수 전제조건이 됐다. 재난 회복력 인프라 연합(CDR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변화하는 기상 패턴으로 인한 전 세계 인프라의 연간 평균 손실액은 미화 약 7,320억~8,4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xcviii] 극한 폭우, 폭염, 홍수, 산불 등은 기존 설계 기준을 무력화하고, 교량·댐·발전소 등 전통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시설에도 새로운 부담을 준다.[xcix]
둘째, 기존 인프라 위에 가해지는 수요 압력이다. 생성형 AI 등 데이터 집약적 기술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계통 업그레이드와 그리드 현대화가 시급해졌다.[c] 하이퍼스케일 사업자는 자체 전력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지만, 송전망·분산형 전원·저장장치 등 공공 인프라 차원의 동시 확충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ci] 정부는 이 과정에서 전력 인프라 다변화(예: 소형 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전원)와 민첩한 규제체계를 병행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한다.[cii]
결국 미래에 대비하는 인프라란 단지 빨리 짓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일정 안에서 완공하면서도 앞으로 수십 년간의 수요 변화, 기후 리스크, 기술 변화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운영·자금조달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과업이다.
공공부문이 직면한 인프라 전(全)주기 실행의 위험 요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계획·설계 단계에서부터 회복탄력성을 내재화
과거 인프라 개발은 ‘현재 수요에 맞게 짓고, 나중에 보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재는 반대로, 처음부터 극한 기상과 미래 수요를 가정하고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시는 상하수도망과 배수 시스템에 AI 및 센서를 도입해 막힘, 월류, 침수 위험을 조기에 탐지하고, 머신러닝으로 수도관 파열을 예측해 사전 보수 지점을 우선순위화하고 있다. 또한 도시 개발 전 단계에서 디지털 트윈과 미세기후 모델링을 활용해, 신규 개발로 열섬 현상이 심화되거나 바람 흐름과 그늘 분포를 해치지 않도록 사전에 검증한다. 이는 폭염 빈도 증가를 전제로 한 도시 인프라 계획의 사례다.[civ]
호주 역사상 최대 도시 철도 투자 사업인 ‘시드니 메트로’(Sydney Metro)는 100년 수명을 가정하고 극단적 기후 리스크를 핵심 설계요소로 반영했다. 단기(2030년), 중기(2070년), 장기(2100년) 시나리오까지 기후모델을 적용해 침수·폭염 취약 구간을 식별하고, 온도 제어가 가능한 설비실, 고온 상황에도 승객 쾌적성을 유지하는 환기 시스템, 빗물 유출을 줄이는 투수성 지면 설계 등을 반영했다. 이처럼 기후 미래를 전제하고 소재·배치·배수 구조를 바꾸는 접근은 향후 한 세기 동안의 운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cv]
미국 버지니아주(Virginia)는 해수면 상승과 염도 증가 예측 모델을 활용해 교량, 배수로, 해안 도로의 소재와 구조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수작업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의 부식·염해·침수 리스크를 반영한 선제적 내구성 설계다. 핵심 목표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환경 조건을 표준 설계요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는 초기비용을 높일 수 있으나, 반복적 붕괴와 복구를 막아 총생애주기비용(LCC)을 낮추는 전략이다.[cvi]
2. 인허가·규제 절차의 간소화와 투명성 제고
인프라 인허가는 본래 공익 보호, 환경 영향 최소화, 취약계층 보호, 지역사회 수용성 확보를 위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중첩된 법령, 부처별 심사, 중복 허가요건은 착공을 수년 지연시키고 민간 투자 의지를 약화시키는 병목이 되곤 한다.
이에 각국은 ‘단일 창구 인허가’와 ‘가시적 투명성’으로 방향을 바꿔가고 있다. 덴마크는 풍력발전 단지를 위한 핵심 인허가를 에너지청이 단일 창구로 일괄 조정해, 해상풍력 인허가 소요기간을 10여 일 단위로 단축하고, 전체 사업 착수까지의 기간을 타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비 수년 이상 줄이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극적으로 높이는 기반이 된다.[cvii]
미국 미시간주(Michigan) 인프라 사무국은 주요 주(州) 인프라 사업의 인허가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개 대시보드를 운영한다. 어떤 허가가 필요한지, 현재 어느 단계인지, 예상 완료 시점은 언제인지가 외부에 투명하게 제시된다. 이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낮춰 비용과 리스크를 줄여주고, 시민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에 대한 의구심을 줄이며 행정 책임성을 높인다.[cviii]
3. 이해관계자 협의 구조의 혁신
초대형 인프라 사업은 지역사회, 기업, 환경단체, 공공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반발과 요구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사후 공청회식 의견 수렴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초기 단계부터 공동 설계자(co-owner)로 참여시키는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Victoria)의 ‘인프라스트럭처 빅토리아’(IV, Infrastructure Victoria)는 향후 30년(2021~2051년)을 내다보는 지역 인프라 전략을 수립하면서, 개별 프로젝트 나열이 아닌 ‘시스템 관점’을 채택했다. 주민·지역 커뮤니티를 계획 수립 초반부터 참여시켜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함께 정의하고, 어떤 인프라는 보수·개량으로 충분한지, 어떤 인프라는 신규로 지어야 하는지를 장기 청사진 안에 담았다. 이는 사회적 수용성과 예산의 효율적 배분을 동시에 노린다.[cix]
핀란드 헬싱키는 디지털 트윈으로 도시 가상복제 모델을 만들어 특정 지역 개발안을 시민이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모바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방식은 전문가 언어로만 진행되던 도시계획을 시민 참여형으로 바꾸면서, 갈등을 사전에 조정하고 장기 인프라 수요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수단으로 주목된다.[cx]
물 인프라처럼 다수 이해관계자가 걸려 있는 분야에서는 다중 이해관계자 협약 모델도 발전 중이다. 미국 체서피크 베이(Chesapeake Bay) 유역 관리 프로그램은 연방·주·지방정부, 비정부기구(NGO), 기업, 학계, 주민 등 광범위한 주체들을 하나의 파트너십 구조로 묶어 수질, 서식지 복원, 산업 활동의 지속가능성, 지역사회 참여까지 통합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구조는 책임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공동의 환경·인프라 목표를 문서화된 합의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사례로 제시된다.[cxi]
4. 재원 조달과 민간 참여 방식의 재설계
인프라 건설에는 막대한 초기자본이 필요한데, 투자 회수가 장기화되고 수익이 불확실할수록 민간 부문은 참여를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첫째,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이다. 정부가 거시·시장·기술·재무 등 다양한 리스크를 분담하거나 보증·보험·정책안정성을 제공함으로써 자본비용(cost of capital)을 낮춰 전체 사업비를 줄이려는 것이다.[cxii] 대표적으로 다자개발은행 및 국제기구가 제공하는 보증과 정치적 리스크 보험은 특히 개도국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민간 투자자의 최악의 시나리오 위험을 제거해 참여 유인을 높인다.
둘째, 공공-민간 간 위험 재배분이다. 일정 수준의 수익 불확실성이나 초기 수요 위험을 정부가 더 많이 떠안고, 민간은 건설·운영 효율성을 책임지게 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고속도로, 송전선, 재생에너지 단지 등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 단순 도급이 아니라 장기적 수익과 책임 구조를 명확히 설계해 민간의 참여장벽을 낮추는 방향이다.
세 번째 축은 보완 인프라를 정부가 선제적으로 깔아주는 모델이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발전은 풍력 및 태양광 자원이 풍부한 외곽 지역에서 추진되지만, 송전선과 저장장치가 갖춰지지 않으면 민간 개발사는 사업 착수 자체를 주저한다. 호주 일부 주정부는 ‘재생에너지 존’(renewable energy zone)을 지정해 대규모 발전소, 저장장치, 장거리 송전선을 클러스터 단위로 설계 및 연결하고 있다. 정부가 송전 인프라 등 기반을 깔아 민간의 상업적 타당성을 확보해 주는 방식이다. 이는 분산된 단일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인프라 네트워크를 한 번에 구축하는 전략이다.
5. 인력 격차 해소: 기술+현장 결합 역량이 관건
숙련 공정 인력, 엔지니어, 전력·신재생 전문 인력, 사이버보안 전문가, 심지어 크레인 오퍼레이터까지 부족한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병목 요인으로 지적된다.cxiii 동시에 공공부문 내부에도 디지털 트윈 및 AI 기반 자산 관리, 복잡한 민관 금융 구조 설계, 다자 협력 조정 등 고급 역량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cxiv]
이에 따라 일부 지역은 인프라 산업 자체를 인력 생태계 관점에서 관리한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건설훈련기금(CTF, Construction Training Fund)은 건설 공사에 부과한 부담금을 재원으로 삼아 업계 맞춤형 기술훈련, 재교육, 견습(어프렌티스십) 보조금을 지원하고, 기업의 인력양성 비용을 상쇄해 준다. 완수 시 인센티브, 추가 연차별 인센티브, 기존 종사자 대상 재교육 비용 환급 등으로 실제 현장 수요에 맞춘 기술 인력을 꾸준히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cxv]
다자개발은행과 같은 기간은 공공 담당자 역량을 직접 육성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인프라 파이낸스 아카데미(Infra Finance Academy)에서 공공 담당자에게 민간투자 유치 구조 설계, 금융상품 활용, 프로젝트 위험배분, 거래 준비 방법 등을 교육하고 사례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며, 특히 중소 지자체와 개발도상국 정부의 내부 역량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cxvi]
미래에 대비하는 인프라를 예산 안에서 시의 적절하게 개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상호 보완적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실행 방향을 수립할 수 있다.
인프라 투자는 더 이상 시설 하나를 뚝딱 짓는 토목 사업이 아니다. 이는 기후 리스크에 견디는 회복탄력성부터 AI 및 디지털 트윈을 통한 정밀 계획, 인허가 투명성, 이해관계자 합의 구조, 재원조달 및 위험배분 모델, 숙련 인력 생태계까지 아우르는 종합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정부의 역할은 단순 발주자가 아니라 플래너이자 조정자이자 리스크 중재자로 확장되고 있다.
미래형 인프라를 예산 안에서 제때 구축한다는 것은 빨리 짓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것을 제대로 짓고, 사회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게 만드는 것이다.
트렌드 6. 국민의 삶의 질 개선
정부는 흔히 국민의 삶의 질을 국민소득, 기대수명, 출산·사망률 등의 수치로 측정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이 실제로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건강, 교육, 소득, 주관적 행복도 등을 종합한 삶의 질 지표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으며, 인구 구조, 문화, 지역 여건 등도 주요 요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삶의 질에 대한 체감은 악화되고 있다. 28개국 시민 3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답한 비율은 36%에 불과했으며, 선진국은 20%로 더 낮았다.[cxvii] 미국의 경우, 성인 72%가 ‘그럭저럭 괜찮다’고 답했지만, 교육 수준과 인종, 가구 형태에 따라 재정적 격차가 심했다.[cxviii]
이 같은 경제적 비관론은 정체된 임금과 높은 물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음에도, 생활비는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평균 물가 상승률은 7.4%에 달했다.[cxix]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 무력감과 신뢰의 붕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정치적 발언권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정부 신뢰 격차는 47%포인트에 달했다.[cxx] 퓨리서치(Pew Research)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24개 민주국가 시민 응답자 중 74%가 ‘정부가 국민 의견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cxxi] 이는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인 시민 신뢰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불안과 고립감도 전 세계적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노인 4명 중 1명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으며, 청소년 5~15%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cxxii] 중국, 인도, 미국, 유럽, 남미 등에서는 노인의 20~34%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cxxiii]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디지털 플랫폼은 사람을 연결하기보다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호주는 2025년 말부터 16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위반 기업에는 최대 5,000만 호주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cxxiv]
이러한 복합적 위기 속에서, 2024년 세계 각국의 선거를 계기로 정부들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핵심 과제로 재정의하고 있다. 단순한 경기 부양이나 복지 확대를 넘어, 주거·교통·보건·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적 유대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확산 중이다.
결국 삶의 질 향상은 단순히 소득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안정, 사회적 신뢰, 심리적 연결감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만이 불안과 불신의 시대 속에서 회복탄력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위기 인식 속에서, 각국 정부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1) 생활비 부담 완화 2) 접근성 향상 3) 사회적 연결 회복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 생활비 부담 완화
주거비는 대부분 가구의 가장 큰 지출 항목으로, 지난 수십 년간 주택가격과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한 반면 소득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OECD 기준 저소득 임차가구 3가구 중 1가구,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저소득 자가가구 4가구 중 1가구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주거비로 쓴다.[cxxv] 미국에서는 임차 가구의 절반 정도는 소득의 30% 이상을 집세와 관리비 등에 지출하고 있고,[cxxvi] 최근 몇 년 사이 월세 상승률은 2011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했다.[cxxvii]
교통비 또한 주거비 다음으로 큰 부담이다. 다수 국가에서 주거와 교통비는 가계지출의 절반을 차지하며,[cxxviii] 이는 도시 밀도, 토지 이용, 접근성 등 생활 인프라 구조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생활비뿐 아니라 공중보건과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주거·교통·보건·인터넷 등 기본 서비스의 ‘지속가능한 생활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구체적 수단은 다음과 같다.
① (재)용도지역제 개편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
정부들은 용도지역 규제 완화로 주택 재고를 늘리고 있다.
②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임대료 규제 개선
임대료 규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시행된 대표적 주거 안정 정책이다.[cxxxiv] 연구 결과, 임대료 규제는 단기적으로 임대 부담을 완화하고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주택 품질 저하, 임차인 이동성 감소, 비규제 지역 임대료 상승, 신규 임대주택 공급 위축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cxxxv]
이에 각국은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임대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23년 임대료 규제를 폐지하고, 계약기간과 임대료를 시장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임대주택 공급이 불과 몇 달 만에 195% 증가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임대료가 안정화되거나 하락했다.[cxxxvi]
요컨대, 주거비와 교통비 등 생활 필수비용의 부담 완화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민 삶의 질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 정책이다. 각국 정부는 규제 완화, 도시계획 재설계, 공공-민간 협력형 공급체계 구축을 통해, 시민이 감당 가능한 수준의 생활비 구조를 마련하고 경제적 포용성과 지역 회복탄력성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③ 주택 소유 촉진을 위한 혁신적 주택금융 모델
전 세계적으로 약 16억 명이 적절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이 수치가 3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cxxxvii]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건축 확대뿐 아니라 저렴하고 지속가능한 금융 지원체계가 필수적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주거비가 높은 도시[cxxxviii]인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 정부와 원주민 공동체(Musqueam·Squamish·Tsleil-Waututh, MST Nations)가 주택 구매자의 부담을 시장가 대비 40% 낮춘 금융모델을 도입했다. 이에 따르면 구매자는 주택 가격의 60%만 부담하고, 나머지 40%는 주정부가 대납한다. 주정부가 대납한 40%는 주택 매각 시점 또는 25년 후에 상환된다. 또한 MST 공동체는 토지를 제공하고, 주정부는 자금을 지원한다. 이 모델은 공공-지역사회 협력형 주택금융의 대표 사례로, 토지공유와 공공자금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주거 접근성 개선 방안으로 꼽힌다.[cxxxix]
④ 대중교통의 지속가능성과 비용 부담 완화
코로나19 이후 선진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여전히 이용객 회복과 재정 지속성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용자가 줄면 요금 인상과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이용률을 낮추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특히 저소득층에게 이러한 불안정한 교통체계는 경제적·사회적 이동성의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는 정책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주(Queensland)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교통비가 높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버스·기차·트램·페리 등 모든 교통수단을 균일요금 50센트(한화 약 440원)로 이용할 수 있는 실험적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에너지요금 보조, 차량 등록비 감면, 아동 수영교실 지원 등을 포함한 생활비 절감 종합대책의 일환이다.cxl 포르투갈 리스본시(Lisbon City)는 2022년부터 18세 미만 청소년, 23세 이하 학생, 65세 이상 노인에게 대중교통 무료 이용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신규 이용객이 3만3,000 명 늘며, 전체 승객 수가 약 60% 증가했다.[cxli]
이처럼 일부 국가는 무상교통제나 균일요금제를 통해 이동비 부담을 완화하고, 팬데믹 이후 이탈한 여가 이용객을 다시 유입시키려 하고 있다. 다만 교통망이 취약한 교통 사각지대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으며, 향후 마이크로 교통(micro-transit) 등과의 연계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⑤ 공공-민간 협력 기반의 인터넷 연결 인프라 확대
디지털 경제에서 인터넷 접속은 사실상 시민의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민간과 협력해 농촌 및 외딴 지역의 인터넷 연결성을 개선하고 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인디애나, 오하이오,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주에서는 메타(Meta)의 자회사 미들마일인프라스트럭처(Middle Mile Infrastructure)가 수백 마일의 광섬유 케이블을 매설해 자사 데이터센터를 연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유 용량을 지역 인터넷 사업자에게 임대해, 미서비스 지역의 통신 속도를 향상시켰다.cxlii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2023년 루멘(Lumen)사와 협력해 기존 관로(conduit)를 활용, 1,900마일의 광케이블을 구축하는 공공-민간 협력(PPP)을 발표했다.cxliii
이러한 ‘중간망 공유 모델’은 공공과 민간이 물리적 인프라를 함께 활용하여,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고 구축비용을 절감하는 혁신적 방식으로 평가된다.
2. 사회적 연결과 공동체 회복
경제와 인프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나는 이 도시/국가의 일부인가?’ ‘내 목소리가 반영되는가’라는 소속감을 원한다. 이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의 과제이다.
① 사랑받는 도시: 싱가포르의 실험
싱가포르 디자인위원회(Dsg)가 주도한 ‘러버블 싱가포르’(Lovable Singapore) 프로젝트는 도시를 경제적, 문화적으로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동시에, 시민의 소속감과 공동체 유대감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Dsg는 시민 2,500명을 조사해 ‘도시를 사랑하지만 소극적인 그룹’, ‘사랑받지만 무관심한 그룹’ 등 4가지 시민 유형(persona) 과 6가지 정서적 연결 축(lovability connection)을 정리했다. 조사 결과, 지나친 규제와 기획 중심의 공영 공간 운영이 도시의 생동감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민 주도형 공영 공간 활성화와 문화적 다양성 확대를 위한 개입 전략을 수립했다.cxliv
② 데이터 기반의 개인 삶의 질 관리: 뉴질랜드 사례
뉴질랜드는 복지 정책을 데이터 기반 사회투자로 전환한 선도국이다. 국민을 위기군, 복합적 필요군, 안정군으로 구분해, 데이터와 증거 기반 개입으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 의존적 복지에서 자립형 복지로 전환한다. 뉴질랜드 정부는 2024년 예산에서 약 5,700만 달러를 이 전략에 추가 투입해, 복지정책의 효율성과 사회적 성과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cxlv]
③ 고립과 외로움: 새로운 공중보건 과제
WHO는 2023년 ‘외로움’(loneliness)을 세계적 보건 우선과제로 지정했다.[cxlvi] 이는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신경생물학적,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전략’을 수립하고,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직책을 신설했다. 이후 일본도 2021년 같은 직책을 도입했다.[cxlvii] 또 영국 정부는 2021~2022년 26만 파운드 규모의 ‘외로움 참여기금’(Loneliness Engagement Fund)을 조성해, 사회적 연결을 돕는 단체를 지원했다.[cxlviii] 캐나다 토론토의 마운트 시나이 병원(Mount Sinai Hospital)은 노인 환자의 외로움을 완화하기 위해 자원봉사자와의 화상 통화 임상시험 프로그램 ‘하우아유’(How R U)를 도입해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cxlix]
삶의 질은 물질적 조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물리적 인프라와 디지털 기술 위에 소속감과 관계망, 신뢰 등 정서적 인프라가 구축돼야 비로소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서로 연결된 도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시 혁신의 방향이며, 이는 데이터·디자인·공공정책이 결합된 새로운 인간 중심형 도시 패러다임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삶의 질’은 더 이상 단일 부처나 단일 지표로 관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주거, 교통, 디지털 접근성 같은 경제적 기반부터 행정 서비스의 연결성, 공동체적 소속감과 심리적 안전감까지 동시에 다뤄야만 국민의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개선된다.
트렌드 7. 에너지 회복탄력성 강화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은 생산·전송·소비 전 과정에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AI와 데이터센터, 전기차 전환, 제조업 재편 등으로 전력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으며, 냉방 수요 증가도 전체 소비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 전력 수요 전망치를 불과 1년 만에 다시 상향 조정했는데,[cl] 이는 전력 인프라가 기존 가정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부담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에너지 믹스(에너지원 구성)는 더 다변화되고 있다. 전통적 화석연료 중심 구조에서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수소, 원자력(특히 차세대 소형 모듈원전 등)과 같은 저탄소·무탄소 전원이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송배전망과 저장 인프라는 이런 변동성 높은 전원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력망은 더 많은 전기를 더 불안정한 공급원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 입장에서 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수요 급증과 에너지원 다변화는 곧 에너지 안보를 재정의한다. 단일 에너지원·단일 수입선에 의존하는 구조는 지정학적 충격, 공급망 교란, 사이버 공격, 기후 재난에 취약하다. 반면, 다양한 전원 조합(태양광·풍력·수소·원전 등), 지역 분산형 전력 시스템, 대규모 저장장치, 스마트 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 등은 외부 충격에도 버티는 회복탄력성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결국 에너지 회복탄력성은 ‘전기가 끊기지 않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 ‘국가·지역·지역사회가 예측 불가능한 수요와 공급 변동, 기후 재난, 사이버 위협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배분할 수 있는가?’라는 거버넌스 과제로 부상했다.
1. 국가·지역 단위 에너지 전략 재구성
각국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단일 솔루션 대신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지역별 자원, 산업 구조, 기후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는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 경제성 간 균형을 유지하며 다변화와 분산을 핵심 축으로 하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 믹스의 미래 전략은 각국의 경제 구조·지리적 여건·정치적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복합 방정식이다. 성공적인 전환의 핵심은 속도보다 균형이며,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 지역 산업 연계성을 동시에 고려한 다층적 접근이 요구된다.
①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안보와 에너지 회복탄력성 확보
화석연료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어[clvi] 대부분의 국가는 수입 의존도가 높다. 이에 따라 에너지 믹스 다변화는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지만,[clvii] 비화석 에너지 비중을 10년 만에 21% 이상으로 확대하며 청정에너지 개발을 가속화했다.[clviii] 미국 역시 풍력과 태양광 중심의 저탄소 전환을 추진 중이며, 2023년에는 비화석 에너지가 1차 에너지 생산의 16%를 차지했다.[clix]
②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현실의 균형
에너지 전환은 단기적 급변이 아니라 점진적 이행 과정이다. 각국은 탄소 감축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적 에너지 수급을 고려해야 한다.
인도는 석탄(46%)과 원유(24%)가 여전히 공급의 주축을 이루며,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청정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면서도 경제 성장과 고용 안정을 병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흥국의 과제인 ‘탄소 감축’과 ‘성장 지속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움직임이다.[clx]
③ 국가별 강점을 살린 에너지 전략
각국은 자국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을 활용한 맞춤형 에너지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일조량을 기반으로 태양광 중심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clxi]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위기를 계기로 풍력 중심의 국가 에너지 체계를 구축했다. 정부는 세제 혜택, 인허가 간소화,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을 통해 풍력 산업을 육성했으며, 2023년 기준 전력의 50% 이상을 풍력으로 공급, 2030년까지 6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clxii]
2. 에너지 믹스의 전략적 전환 촉진
에너지 믹스의 미래 전략을 가속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에서의 균형 잡힌 접근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에너지 생산 다변화가 아니라, 산업정책, 규제 개혁, 기술 혁신을 종합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① 공급·수요 양면 전략으로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
각국 정부는 공급 측면에서 △규제 간소화 △전력망 인프라 고도화 △국산 청정에너지 장비 제조 지원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 인센티브 △운송 부문 전기화 △전력망 연결 절차 간소화 등을 병행한다. 궁극적으로는 산업정책, 규제체계, 인센티브 설계가 통합된 국가 차원의 에너지 회복력 로드맵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② 청정에너지 성장을 이끄는 정부의 전략적 투자
각국 정부는 직접적 투자뿐 아니라 민간 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촉매자’(catalyst)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산업정책을 통해 바이오연료, 청정수소, 차세대 원자력 등 신에너지 기술 개발을 촉진했다.[clxiii] EU는 그린딜(Green Deal)을 기반으로 2050년 탄소중립, 2030년 55% 감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2023년 한 해 1,100억 달러를 청정에너지 발전에 투자했다.[clxiv] 중국은 2023년에만 6,760억 달러를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 투입하며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clxv]
③ 혁신 가속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의 확대
에너지 신기술의 현장 실험을 위해 일부 국가는 임시 규제 완화 구역(sandbox)을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 에너지청(EMA)은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구축 등 혁신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할 수 있도록 임시 규제면제를 허용하고 있다.[clxvi] 독일 북부 리빙랩(Living Lab)은 수소에너지의 산업·모빌리티 부문 활용을 실증 중이다.[clxvii] 미국 유타주(Utah) ‘인터마운틴 파워 프로젝트’(Intermountain Power Project)는 석탄 발전소를 천연가스 및 수소 기반 발전으로 전환 중이며, 2045년까지 수소 100% 발전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clxviii]
④ AI 시대의 에너지 수요 관리: 새로운 변수와 기회
AI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전력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26년이면 AI 구동 서버의 에너지 소비량이 일본 전체 연간 사용량에 맞먹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clxix] 이에 각국은 AI 에너지 효율화와 산업 협력 기반의 전력 확보를 병행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6,800만 달러 규모의 연구 프로젝트 43건을 지원, 에너지 효율적 AI 하드웨어와 알고리즘 개발을 추진 중이다.[clxx] 미국 주요 IT 기업과 소프트뱅크(Softbank)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스타게이트’(Project Stargate)는 1,000억 달러 규모의 민간 투자 프로젝트로, 대규모 AI 컴퓨팅 인프라와 전력 생산 설비를 함께 구축한다.[clxxi] 이 외에도 유럽의회는 AI 시스템의 수명주기별 에너지 소비 기록 의무화를 도입해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화하고 있다.[clxxii]
3. 미래 대비 에너지 인프라 확대
전 세계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생태계 구축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생산·저장·전송·소비 전 과정에 걸친 통합적 시스템 설계를 의미한다.
미래 에너지 인프라는 더 이상 발전소 단위의 문제가 아니다. 수소 생산시설, 전력망, 저장장치, 디지털 모니터링, 인력과 산업 생태계까지 포괄하는 ‘통합 에너지 플랫폼’ 구축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인센티브, 규제개혁, 공공투자·민간협력 등 4대 축을 조율하는 ‘거버넌스 설계자’(governance architect)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인프라 확충은 물리적 설비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설계의 문제이다.
① 신에너지 인프라와 생태계의 병행 구축
에너지 믹스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원(예: 수소, 재생에너지)에 적합한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의 동시 발전이 필수적이다. 이에 각국 정부는 재정 인센티브 제공, 규제 정비, 제조 및 인력 역량 강화 등을 통해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Alberta)는 ‘수소 로드맵’(Alberta Hydrogen Roadmap)을 발표하며 300억 캐나다달러 규모 투자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로드맵은 수소 생산, 유통, 산업 활용까지 아우르는 상업용 수소 시장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며, 인프라 확충, 민관 협력, 기술 혁신을 병행하고 있다.[clxxiii]
수소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최대 24%를 담당할 잠재력이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국이 생산·저장 기술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② 전력망 확충 및 현대화를 위한 민간투자 유도
향후 전력수요는 2050년까지 15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데이터센터, 암호화폐 산업의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기존 전력망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clxxiv 또한 풍력·태양광 등 분산형 에너지의 간헐성(intermittency)이 전력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어,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전력망 현대화가 시급하다.
그러나 2050년까지 14조3,0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전력망 투자 격차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송배전망 부족분만 연간 200만km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clxxv] 따라서 공공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민간 자본 유치가 절실하다.
이에 일부 국가는 세제 혜택, 보조금, 장기구매계약(PPA)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일례로 호주는 전력망 확충 프로젝트에 정부·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그리드 업그레이드 파트너십’(Grid Upgrade Partnership)을 운영해, 장기적 인프라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clxxvi]
③ 에너지 저장시스템(ESS) 확충 정책
청정에너지의 확대는 저장 시스템의 동반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의 전력 비중은 2023년 30%에서 2030년 46% 로 증가할 전망이다.[clxxvii] 이에 풍력 및 태양광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각국은 대규모 ESS 구축을 추진 중이다.
ESS는 △여분 전력 저장 및 수요 기반 방출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전력 품질(주파수·전압) 안정화 △송전 손실 감소 △정전 리스크 완화 등 다층적 역할을 수행한다.[clxxviii] 미국 주(州) 중 약 3분의 1이 ESS 확산을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 정책을 채택했다.[clxxix]
4. 지역사회의 에너지 회복탄력성 강화
에너지 회복탄력성은 더 이상 국가 차원의 과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공동체 단위에서의 에너지 자립과 위기 대응력 확보가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 인프라의 하향식 확장과 함께, 지역 커뮤니티의 상향식 자립 역량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회복탄력적 전력망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거버넌스와 공공-민간 협력, 지역참여 모델이 결합된 구조다. 궁극적으로는 각 지역이 스스로 에너지 위기 대응력을 확보해 자급자족형 에너지 공동체(energy-resilient community)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다. 에너지 회복력은 중앙정부의 계획이 아니라, 지역이 직접 구현하는 분산형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① 지역 단위로 확산되는 에너지 회복력 전략
2022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1%가 전력 접근성을 확보했지만,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기상이변으로 인해 전력 접근 인구가 오히려 1,000만 명 감소했다.[clxxx]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와 더불어 지역사회 기반의 회복탄력성 내재화에 주력하고 있다.
② 지역사회의 에너지 위기 대응력 강화
지속적인 전력 공급과 재난 복구를 위해 지역정부와 커뮤니티 단위의 에너지 비상대응 계획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농촌전력협동조합(Rural Electric Cooperatives)은 회원이 직접 운영하는 비영리 모델로, 지역 맞춤형 전력망을 구축하고 재난 시에도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유지한다.[clxxxi] 미국 미주리주(Missouri) 자연자원부(DNR)는 지역 도시들과 함께 ‘회복력 로드맵’(Roadmap to Resilience)을 수립해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난 대응 인프라 강화 방안을 지원하고 있다.[clxxxii]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공사(IFC)는 가나 전력 접근성 프로젝트(2억2천만 달러 규모)를 통해 5개의 태양광 미니그리드(mini grid)를 설치, 1만 명 이상이 안정적 전력을 공급받도록 지원했다.[clxxxiii]
③ 기상이변으로부터 에너지 인프라 보호
최근 몇 년간 폭풍, 홍수, 산불 등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이 잇따르면서 기후 리스크 대응형 전력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졌다.[clxxxiv]
EU는 ‘호라이즌2020’(Horizon 2020)과 ‘커넥팅 유럽 퍼실리티’(Connecting Europe Facility)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그리드 연구와 송전 인프라 현대화 프로젝트를 지원 중이다.[clxxxv] 미국령 버진아일랜드(USVI)는 전력선을 지하화하고, 내풍(耐風) 복합 폴대를 설치해 강풍 피해를 최소화했다. 미국 코네티컷주(Connecticut)는 기후 회복력 보조금으로 홍수 방지용 변전소 보호벽을 설치했다.[clxxxvi]
기상이변은 모든 발전원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향후 전력망의 복원력 강화와 스마트 기술의 접목이 필수 과제로 꼽힌다.
④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구축으로 지역 자립성 확보
대규모 정전 시에도 마이크로그리드는 메인 전력망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가동될 수 있다. 적절히 설계되면 병원, 군기지, 버스 터미널, 학교 등 주요 거점 시설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인도 차티스가르주(Chhattisgarh)는 500개 이상의 태양광 마이크로그리드를 설치해 농촌 지역의 자급형 전력망을 구축했다. 일본 무쓰자와시(睦沢町)는 천연가스와 태양광 기반 분산형 마이크로그리드를 운영하며, 부족분은 외부 전력 구매로 보완하는 자립형 에너지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했다.[clxxxvii]
에너지는 단순한 산업 부문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 사회 안정, 지역 생존을 동시에 지탱하는 기반 인프라다. 글로벌 전력 수요는 AI와 전기화(모빌리티, 난방·냉방, 산업공정)를 통해 앞으로도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화석연료 의존형, 단방향 송전 모델로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의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에너지 믹스 다변화를 통해 수입 리스크와 단일 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지속가능성과 경제 현실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둘째, 전력망·저장·마이크로그리드 등 하드 인프라 업그레이드에 민관 투자를 결집해, 수요 급증과 기후 재난에도 끊김 없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정책·재정·규제 생태계를 통합 설계해 산업계, 지역사회, 공공부문의 행동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켜야 한다.
에너지 회복탄력성은 미래형 전력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인프라, 시장, 사람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 시스템의 문제다. 정부가 이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설계 및 조정해야, 국가는 단지 ‘전기 불이 켜져 있는 상태’를 넘어, 위기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갖게 된다.
트렌드 8. 미래 일자리 준비
AI를 비롯한 스마트 기술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면서, 각국 정부·기업·교육기관은 미래 일자리에 맞는 인력 재교육과 기술 역량 재설계를 서두르고 있다.
향후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칠 정확한 영향은 불확실하지만, 그 규모와 속도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27년까지 AI·머신러닝 전문가 수요는 40%, 데이터 분석가·빅데이터 전문가·정보보안 분석가 등은 최소 30% 증가해 약 26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존 직종의 대체와 숙련 인력 부족 현상은 동시에 심화될 전망이다.[clxxxviii]
또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는 태양광 설치 전문가, 전기 기술자 등 전문 직종의 수요가 급증하고, 자율주행차 산업 확대는 운송·제조 등 전통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부 정부는 미래 인력 수급 불균형에 대비해 △기술 수요 예측 역량 강화 △산업-교육-노동시장 간 협력 확대 △고등교육 체계의 민첩성 제고 △직업 전환기 근로자 보호 및 재교육 지원 제도 재정비 등 종합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미래 일자리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지속적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의 제도화이며,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고용 정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력 생태계 설계자로 진화하는 것이다.
미래 일자리 대비는 정부-대학-산업 간의 긴밀한 협업과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급격한 기술 변화 속에서 직업의 형태와 필요한 기술이 빠르게 변하면서, 정부는 단순 대응을 넘어 선제적 인력 전략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 변화가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정부의 역할은 단순 고용 창출이 아닌 ‘국가 인재 생태계 설계자’로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 산업 연계 교육, 평생학습 체계화, 전환기 노동자 보호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미래 일자리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 가능한 리스킬링 시스템과 협력적 인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1. 데이터 기반의 미래 일자리 예측
더 이상 사후적 노동정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선제적 인력 수요 예측으로, 기술 변화에 앞서 노동시장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데이터 생태계를 활용해 산업 수요와 교육 공급, 개인 역량 간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구직자·고용주·교육기관 모두가 실시간으로 시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1,300개 대학·대학원 전공을 평생소득(ROI) 기준으로 평가해 낮은 수익률 학과를 폐지, 학생을 성장 산업 중심 전공으로 유도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마이 커리어스 퓨처’(MyCareersFuture) 플랫폼은 AI 기반 매칭 시스템을 통해 개인 기술과 직무 요구를 실시간 비교한다. 이 플랫폼은 주간 20만 명이 이용하는 국가형 직업 AI 플랫폼으로 발전했다.[clxxxix]
2. 고등교육의 구조 전환: 학위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전통적인 대학 모델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학위는 더 이상 직업 안정의 보증이 아니라, 지속적 업스킬링 경로의 한 단계로 재정의되고 있다. 교육은 이제 ‘4년 동안 배우고 40년 일하는 모델’에서 ‘40년 동안 배우며 일하는 모델’로 바뀌고 있다.
이에 온라인 및 하이브리드 교육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 전체 학생의 약 70%가 온라인·혼합형 교육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cxc] 온라인 중심 대학으로 급성장한 대표 사례로는 미국 웨스턴 거버너스 대학(Western Governors University)과 서던 뉴햄프셔 대학(Southern New Hampshire University)을 꼽을 수 있다.[cxci]
모듈형·적층형 학점 제도도 확산되고 있다. 인도 교육부는 디지털 학점은행 ABC(Academic Bank of Credits)을 도입해 학생이 학점을 쌓아 이동·복귀·전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ABC에는 3,000만 명 이상이 등록했다.[cxcii]
조지타운 대학(Georgetown University)의 플렉스 프로그램(Flex Program)은 2~5년 내 자유롭게 학위를 이수하며 실무를 병행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여 수료생의 45%가 승진 및 보직을 확장했다.[cxciii]
3. 산업-교육-정부 간 삼각 협력 모델의 부상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각국은 산학 협력형 훈련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직접 양성하고, 학생은 취업과 동시에 기술을 습득, 정부는 구조적 실업을 완화하는 삼자 공진화 모델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Texas)의 ‘하우스빌8’(House Bill 8)은 대학 재정지원을 등록 인원 기준에서 성과 기반(졸업·취업률 중심)으로 전환해, 교육이 산업 수요에 직접 연계되도록 유도하고 있다.[cxciv] 영국 코벤트리 대학(Coventry University)의 ‘팩토리 플로어 패큘티’(Factory Floor Faculty)는 실시간 제조 현장을 학습 공간으로 변환, 연구-교육-생산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cxcv]
독일 듀얼 직업 트레이닝 제도(Dual Vocational Training System)는 기업과 직업학교가 공동 설계한 ‘현장+이론 병행’ 모델로 330개 직종의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아일랜드 국가견습청(National Apprenticeship Office)은 2014~2023년 프로그램 수를 27개에서 70개로 확대, ICT·바이오·물류 등 비전통 분야까지 확장했다.[cxcvi]
4. 전환기 노동자 보호: ‘리스킬링 안전망’ 구축
기술 혁신과 구조조정이 동반되는 산업 전환기에 기존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 실업 대책이 아니라, 산업 재편과 개인 생애주기 학습을 연결하는 구조적 전환 지원 시스템이다.
캐나다는 30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대량 해고 대응 재교육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cxcvii] 지방정부와 비영리기관이 맞춤형 직업 전환 프로그램을 설계해 지역별 노동수요에 맞춘다. 호주 빅토리아 주 깁스랜드(Gippsland)는 석탄산업 종사자 500여 명의 ‘풍력 산업 전환 가이드’를 마련해, 2주~6개월 내 재훈련 후 전환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cxcviii] 싱가포르 ‘스킬즈 퓨처 레벨업’(SkillsFuture Level-Up) 프로그램은 40세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최대 4,000싱가포르달러의 학비와 이전 소득의 50% 및 최대 3,000 싱가포르달러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한다.[cxcix]
5. 국가 인재 생태계 형성
궁극적으로 정부는 더 이상 고용 주체가 아니라 국가 인재 생태계의 설계자로 변화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산업 연계, 교육 혁신, 사회안전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노동 및 교육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래 인력 전략의 핵심은 불확실한 기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국민의 학습력(adaptability)이며, 이는 AI보다 빠르게 배우는 인간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고등교육과 직업훈련은 ‘학위 수여 기관’에서 ‘고부가가치 인재 공급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모듈형 학습 경로, 산업 맞춤형 커리큘럼, 도제·재교육 모델, 중장년 전환 지원, 실시간 노동시장 데이터, 표준화된 디지털 스킬 인증까지 이 모든 요소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교육은 개인의 생애 전체에서, 실제 일자리 성공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는가? 정부와 대학, 기업은 이제 그 질문에 공동으로 답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트렌드 9. 우주 산업 개발을 위한 복합적 과제 해결
전 세계 우주 산업은 더 이상 소수 국가의 ‘국가적 위신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는다. 통신, 내비게이션, 감시·관측, 기상, 농업, 금융, 물류, 국방, 심지어 의약품·부품의 우주 제조까지 산업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그 결과 우주 경제의 규모는 2007~2022년 두 배 이상 성장했고, 2027년에는 미화 약 8,0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동시에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려지는 물체(위성·탑재체) 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cc] 즉 우주 이용은 더 확대되고, 더 상업화되고, 더 일상화되는 중이다.
이러한 성장은 단지 경제적 기회 때문만이 아니다. 위성 기반 항법·통신·정찰 능력은 현대 군사력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 국가 안보까지 연결되면서 각국은 우주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민간도 속도를 높이며, 정부와 민간의 협력 구조가 우주 산업의 기본 운영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성장 궤적이 지속 가능한 궤도라 할 수는 없다. 우주 접근의 물리적 한계(혼잡, 파편), 투자 심리의 변화, 지정학적 경쟁, 국제 규범 부재 등 복합 과제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현재 우주 산업은 급성장 속에서도 네 가지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1. 민관 협력으로 가속화하는 혁신
상업적 우주 산업의 혁신은 인류가 지구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고, 일상생활과 안보 모두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대형 위성군을 중심으로 한 상업용 위성 광대역 네트워크는 전 세계를 연결하며, 외딴 지역의 통신망 구축과 국가 안보 강화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자국형 위성 네트워크를 앞다퉈 구축 중이다. EU는 정부·민간 모두를 위한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IRIS2 위성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cci]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국의 천범(Thousand Sails) 위성군 등 자체적 글로벌 통신망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다.[ccii]
우주 산업은 민간기업들이 혁신의 중심에 서 있지만, 정부 기관은 민간 혁신의 촉매제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민간 LEO 거점’(CLDs, Commercial LEO Destinations) 프로그램을 통해 저궤도 상업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며,[cciii]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기술 이전 협정을 통해 민간 우주기업 성장 기반을 넓히고 있다.[cciv]
공공과 민간의 긴밀한 협력은 양측 모두에 이익을 준다. 국제우주정거장(ISS)처럼 정부가 초기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이 혁신, 비용 절감, 운영 효율화로 확장하는 모델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탐사·안보·통신 등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민간은 상업적 수익과 기술 확산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파트너십 기반의 혁신으로 우주 개발의 주체를 국가에서 공유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 향후 민간이 정부를 보조하던 단계를 넘어, 공동 개발·운영의 대등한 협력 구조가 확대될 전망이다.
우주 혁신의 다음 단계는 ‘누가 더 높은 궤도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이제 발주자가 아니라 민간 혁신을 촉발하는 전략적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2. 우주 산업의 영역 확대
우주 산업은 발사체, 위성통신, 지구관측 같은 전통적 영역을 넘어, 새로운 상업·기술 생태계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이 변화는 공공-민간 협력, 신흥 기술 분야의 부상, 거버넌스·안보·환경 문제의 복합적 전환을 수반한다.
우주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더 많은 위성을 쏘는 기술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궤도 환경 관리, 국제 공조 기반의 거버넌스, 공공-민간 협력형 혁신 구조, 경제·안보 간 균형 설계에 달려 있다. 즉, 우주 개발의 다음 단계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이며, 이를 주도하는 국가는 향후 우주경제의 규칙을 정하게 될 것이다.
① 전통적 영역을 넘어선 신흥 우주 활동
최근 투자는 궤도상 정비·조립·제조(ISAM), 우주 교통 관리, 파편 제거, 차세대 군사 능력, 대형 탐사 프로그램(미국 Artemis, 인도 Chandrayaan) 등 새로운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공공-민간 협력을 통한 우주 내 생산 실험실로 활용되고 있으며, 의약품·반도체·인체 조직(연골) 제조까지 진행 중이다.[ccv] 일본·미국·영국 등은 위성 정비 및 파편 제거 기술을 민간기업과 공동 개발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ccvi] 이러한 궤도상 산업화는 단순한 위성 서비스 산업에서 ‘우주 경제권’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② 투자 환경의 변화와 정부 역할 강화
우주 산업은 2022년 투자 위축 이후 2023년 약 125억 달러 규모로 회복했으나, 여전히 신중한 투자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ccvii] 벤처 및 사모 자본은 과도한 낙관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 중심의 선별 투자로 이동 중이다. 한편 정부 지출은 경제·과학·안보 측면에서 우주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고비용 구조로 인해 소수 선진국 중심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③ 우주 거버넌스: ‘궤도 교통 관리’의 시급성
지구 궤도에는 이미 1만1,000 기 이상의 위성이 운용 중이며,[ccviii] 2030년에는 2만 기 이상으로 늘 전망이다.[ccix] 위성 간 근접접근 사례는 2021~2022년 58% 증가해, 국제적 우주 교통 관리 체계(Space Traffic Management)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미국은 우주교통 관제시스템 트랙스(TraCSS, Traffic Coordination System for Space)를 통해 민간·정부 운영체의 궤도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ccx] 유럽우주국(ESA)도 유사한 추적·카탈로그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ccxi] 그러나 여전히 국가간 데이터 공유와 운용 규범의 부재가 문제로 남아 있다.
④ 우주 파편 문제: 산업 지속성의 최대 리스크
현재 수만 개의 파편이 궤도에 남아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저궤도(LEO)에 집중돼 있다. 2024년 초에도 비조종 위성과 파편 간 근접 충돌이 발생했으며, 이는 수천 개의 새로운 파편을 발생시킬 뻔했다.[ccxii]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민간과 협력해 ‘우주 쓰레기 제거 실증 프로젝트’(CRDM)를 추진 중이고, 유럽·미국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ccxiii] 특히 ISAM 기술은 우주 내 수리·조립뿐 아니라 파편 제거와 산업 보호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이중 기능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⑤ 지정학적 경쟁의 심화와 ‘우주 안보’의 부상
우주는 통신·정찰·항법 등 군사 작전의 핵심 기반이자, 국가 안보 경쟁의 새로운 전장이다. 따라서 위성간 근접 비행, 전자전(EW), 사이버 간섭 등은 궤도상 오해와 충돌 위험을 키우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일부 국가는 ‘위성 간 도그파이트’(dogfighting) 시도를 포함한 공격적 궤도 행동을 수행 중이다.[ccxiv] 이런 경쟁은 기술 혁신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우주 공간의 불안정성과 민간 피해 위험을 심화시킨다.
특히 신흥국은 선진국 대비 비용 우위와 효율성을 바탕으로 자체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저비용 혁신형 우주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 인도의 저예산 달·화성 탐사).
⑥ 경제와 안보의 균형: 새로운 국제 규범 필요
우주 산업 확대는 군사 충돌 시 전 지구적 피해 리스크를 높인다. 따라서 경제적 상호의존성 강화를 통해 무력 충돌의 유인을 줄이고, 행동 규범과 명확한 통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엔(UN)의 ‘위성 파편을 발생시키는 반위성무기 실험 금지 결의’는 이러한 긍정적 움직임의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우주 개발의 미래 경쟁력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민간 자본의 역동성과 정부의 정책 조정력, 국제 협력의 투명성이 결합될 때, 우주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새로운 경제·안보 프론티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주 산업은 성장 궤도에 올라서 있지만, 그 여정이 ‘순탄한 직선’이 될지, 혹은 ‘굴곡진 곡선’이 될지는 정부의 역할에 달려 있다. 정부는 신흥 우주 시장을 육성하면서도, 지정학적 경쟁으로 인한 리스크를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민간 부문 역시 혁신과 투자를 통해 산업 발전의 축으로 참여해야 한다.
결국 정부의 전략적 조정력과 민간의 창의적 추진력이 결합될 때, 우주 산업의 성장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경제·안보·과학적 가치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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