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업 기반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전환한 글로벌 제조기업
엔지니어링에서는 움직이는 부품이 많을수록 마찰이 커지고, 마찰이 커질수록 효율은 떨어진다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결국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고장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 원칙은 한 글로벌 중공업 제조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 기업은 오랜 기간 내구성과 전문성을 내세운 장비를 주력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품군이 확대되고, 인수합병이 반복되면서 내부 운영 구조 역시 복잡해졌습니다. 그 결과, 필수 프로세스가 확장됨과 동시에 불필요한 행정 프로세스도 함께 늘어나게 됐습니다.
일부 복잡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산업과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백오피스에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주문에서 납품까지 이어지는 핵심 프로세스인 주문 관리 시스템에 있었습니다. 고객은 거래 채널을 통해 장비를 구성하고, 주문은 여러 생산 거점으로 나뉘어 전달되며, 각 부품은 각각의 공장에서 생산된 뒤 조립을 거쳐 최종 납품됩니다. 복잡한 주문 과정은 비효율적이었고, 중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작업이 중심이었습니다. 거래처들은 PDF 카탈로그를 확인해 장비를 구성하고, Excel로 정리한 뒤 이를 다시 각자의 ERP 시스템에 입력해 공장 주문 시스템으로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카탈로그는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부품 번호나 가격이 잘못 입력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또한 각 거래처마다 사용하는 ERP 시스템이 달라, 전체 프로세스의 일관성도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공장 주문 시스템은 여전히 1970년대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담당자가 직접 오류를 수정해야 했고, 한 건의 주문을 완료하기까지 수십 차례의 수작업이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최대 65번의 수정이 필요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구조는 점점 복잡해졌고, 비효율이 누적되어 더 이상 이러한 방식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기업은 딜로이트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한 건의 주문을 처리하는 데 최대 65번의 수정이 필요했다
딜로이트는 이 문제를 기업이 성장해 온 경로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구조를 설계한 뒤, 각 기능을 모듈 단위로 나누어 최적화하고, 이를 다시 통합하는 방식입니다.
단, 이번에는 물리적 부품이 아닌 디지털 구조였습니다. 결과물은 새로운 주문 관리 시스템, 즉 엔터프라이즈 기술 플랫폼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거래 채널에서 발생하는 주문을 통합하고, 반복적인 수작업을 자동화해 주문 정확도와 처리 속도를 동시에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설계는 이벤트 기반(Event-driven)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문 처리, 재무, 자재 흐름을 담당하는 핵심 시스템은 SAP ERP를 기반으로 구축하고, 온프레미스와 클라우드 환경을 혼합해 전체 프로세스를 연결했습니다.
이 구조에서 주문은 클라우드 기반 SAP 커머스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실시간 정보 제공, 셀프 구성 기능, 배송 추적, 가격 자동 반영 등 기존 수작업을 대체하는 기능이 포함됐습니다. 이후 주문은 세일즈포스(Salesforce)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처리 및 일정 관리가 이루어지며, 생산과 납품 과정 전반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문 데이터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 플랫폼으로 전달되어 표준화된 뒤, 각 생산 시스템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와 같은 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통합과 보고 기능이 강화됐습니다.
프런트와 미들 영역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핵심 시스템은 온프레미스로 유지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통해 전체 프로세스 간 연계를 안정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전환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여러 공장에 분산돼 있던 기존 ERP 시스템을 통합해 SAP ECC(SAP ERP Central Component) 기반 단일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로젝트 규모를 고려해, 글로벌 전환은 5년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미국 내 공장 한 곳과 해외 공장 한 곳을 대상으로 한 1차 전환이 완료됐으며, 추가로 해외 공장 5곳으로 확장 중입니다.
새로운 주문 시스템은 이미 실행되어 실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클라우드와 온프레미스를 결합해 시스템 간 끊김 없는 연결을 구현하다
5년 계획 중 2년이 지난 현재, 새로운 주문 관리 시스템은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개선된 주문 방식이 빠르게 확산됐고, 사내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플랫폼 기반 주문 매출은 연간 200% 성장하고 있으며, 주요 매출 채널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품 구성에 걸리는 시간 역시 크게 단축됐습니다. 기존에는 30분 이상 소요되던 작업이 이제는 2분 이내로 완료되며, 수작업 오류는 98% 감소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단순한 운영 효율 개선을 넘어, 회사의 시장 경쟁력과 수익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도입 이후 누적 110억 달러의 매출을 거뒀으며, 2023년 한 해에만 전체 글로벌 주문의 약 3분의 1이 이 플랫폼을 통해 처리됐습니다. 이를 통해 전년 대비 104%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 변화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신규 기능인 단일 주문 통합 청구(SOCI, Single Order Consolidation Invoice)는 장비와 부품을 운송 과정에서 통합할 수 있도록 해, 물류 및 재고 비용을 수백만 달러 절감했습니다. 동시에 주문 처리 과정의 가시성을 높여 추가적인 운영 개선 효과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술 구조 역시 확장성을 고려해 설계됐습니다. 모듈형 이벤트 기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변화하는 비즈니스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며, 향후 머신러닝과 자동화를 통해 데이터 통합과 보고 기능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SAP S/4HANA로의 전환을 통해 추가적인 효율 개선도 기대됩니다.
구조가 단순해질수록 마찰은 줄어듭니다. 이 기업은 이제 물리적 제품뿐 아니라 디지털 운영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며, 다음 단계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